[리뷰] 53세? 소녀 줄리엣 그 자체였다

입력 : 2016.10.25 00:38

[유니버설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엣 역의 알레산드라 페리, 사랑에 빠진 감정 다채롭게 살려
절규하는 연기선 연륜 묻어나

그녀의 토슈즈는 중력도 비켜가는 것 같았다. 23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유니버설발레단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1막 6장의 발코니 장면이었다. 줄리엣 역의 알레산드라 페리는 로미오와 첫 키스를 나눈 뒤 수줍음과 기쁨으로 휩싸여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몸짓으로 사뿐사뿐 계단을 올랐다. 찰나의 사랑을 영원으로 승화시키려는 듯 그녀가 발코니로 우아하게 팔을 늘어뜨리면서 1막이 끝났다. 애써 참았던 관객의 함성과 박수가 한꺼번에 터졌다. '브라보'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23일 저녁 유니버설발레단의‘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6장 발코니 장면에서 이인무를 추는 알레산드라 페리(오른쪽)와 에르만 코르네호. /유니버설발레단
23일 저녁 유니버설발레단의‘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6장 발코니 장면에서 이인무를 추는 알레산드라 페리(오른쪽)와 에르만 코르네호. /유니버설발레단
배율 높은 오페라글라스로 얼굴 주름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무대 위 페리는 53세가 아니라 그보다 40년은 어린 소녀 줄리엣의 자태 그대로였다. 1막 2장 첫 등장부터 풋풋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파드되(이인무·二人舞)에선 프로코피예프 선율에 맞춰 가볍게 허공을 날았다.

냉정하게 따지면 '줄리엣의 현신'으로 불렸던 20대 전성기에 미칠 수는 없을 것이지만, 페리의 줄리엣은 화려함보다는 비극적인 섬세함에 방점을 찍었다. '무대 위의 모든 동작에서 자신의 스토리를 표현하라'고 했던 안무가 맥밀란의 지침대로 페리는 팔다리의 유려한 움직임과 표정, 눈짓 하나에도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살려냈다.

3막, 두 손으로 귀를 감싸쥐며 눈시울을 붉히다가 가짜 독약을 앞에 놓고 고뇌하고, 로미오의 시체를 확인한 뒤 절규하는 페리의 연기에선 연륜이 묻어났다. 줄리엣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팔다리를 땅으로 축 늘어뜨린 채 로미오와 추는 이인무는 몽환적이었다. 마흔이면 '환갑'으로 통하는 발레리나의 세계에서 페리처럼 나이를 잊은 채 활동한 무용수로는 지난해 은퇴한 프랑스의 실비 기옘(51), 올해 은퇴한 한국의 강수진(49) 등이 있다.

이날 공연에서 로미오 역 에르만 코르네호는 디테일에 강한 몸짓으로 페리와 조화를 이뤘다. 관악 파트에서 눈에 띄는 실수가 잦았던 강남 심포니의 연주는 옥에 티였다. 페리는 26일 한 차례 더 무대에 선다.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70-7124-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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