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가득한 그 극장, '유커'로 가득 차다

입력 : 2016.10.11 03:00

['관광객 대상 공연장' 된 도심 개봉관]

서울·허리우드·명보·코리아… '난타' '비밥' 등 非언어극 공연
경복궁~DDP 관광객 동선에 위치… 무대+객석 시설, 공연장 개조 쉬워

지난 주말 댄스 뮤지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사춤)'를 보러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건물의 4층 공연장을 찾은 직장인 A(46)씨는 언젠가 와본 곳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객석에 앉아 무대 쪽을 볼 때쯤에야 그곳이 어디였는지 생각났다. 꼭 10년 전인 2006년 폐관한 영화관 시네코아였다. 좁은 로비와 계단으로 이어진 객석 입구 등 구조도 옛날 그대로였다.

'킹덤' '그녀에게'를 비롯한 숱한 예술영화 상영으로 이름난 마니아의 성지(聖地). 또 홍상수 감독 '극장전'의 배경이기도 했던 추억의 극장이지만, 지금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다수인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관광코스 중 하나로 비(非)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을 보기 위해서였다. 버스에서 단체로 내려 웃고 떠들면서 공연장으로 올라가는 그들은 이 공간의 유래를 알 턱이 없다. 이 건물 지하에선 역시 비언어극인 '비밥'을 공연하는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비언어극 ‘드럼캣’을 공연 중인 서울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로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 1957년부터 2008년까지 ‘명보극장’이란 이름으로 숱한 영화를 상영했던 추억의 개봉관이다. 옛 영화관 시설은 무대와 객석을 갖추고 있어 공연장 개조가 비교적 쉽다. /성형주 기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비언어극 ‘드럼캣’을 공연 중인 서울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로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 1957년부터 2008년까지 ‘명보극장’이란 이름으로 숱한 영화를 상영했던 추억의 개봉관이다. 옛 영화관 시설은 무대와 객석을 갖추고 있어 공연장 개조가 비교적 쉽다. /성형주 기자
추억의 '도심 개봉관'들 중 상당수가 최근 몇 년 새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설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중구 초동의 명보아트홀(옛 명보극장)에선 타악 퍼포먼스인 '드럼캣'을 공연하고 있다. 종로구 낙원동의 옛 허리우드극장엔 실버영화관인 허리우드클래식과 함께 미술 퍼포먼스 '페인터즈 히어로' 공연장이 들어섰다.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3층에 있는 국내 대표적 비언어극 '난타' 전용관은 옛 코리아극장 자리다.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은 10여개 상영관 중 하나를 '페인터즈 히어로' 전용관으로 바꿨다. 공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최근 마친 중구 정동 경향아트힐(옛 스타식스정동)도 비언어극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영화 개봉작을 보려면 사대문 안의 도심 개봉관으로 가야 했고, 그 바깥의 영화관은 재개봉작을 상영한다는 일종의 '공식'이 있었다. 보통 한 영화를 한 극장에서만 상영했기 때문에 인기작을 보려면 길게 줄을 서거나 암표를 사야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이 대세가 되면서 '도심 개봉관'이란 프리미엄은 사라졌다. 국도·단성사·스카라·아세아 등 옛 개봉관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중앙·명보·허리우드 등은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 중 현재 일반 영화관으로 남아있는 곳은 복합관으로 개조한 서울·대한극장과 CGV 체인점 중 하나가 된 피카디리뿐이다. 그 가운데 서울극장과 명보·허리우드·코리아·시네코아 등은 '관광객 대상 공연장'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최광일 한국공연관광협회장은 "옛 개봉관 위치가 경복궁과 종로, 명동, 동대문시장, DDP로 이어지는 요즘 관광객 동선과 가깝다는 이점을 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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