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05 09:55
【서울=뉴시스】김나희 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 = 연휴의 끝자락이 지나는 지난 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을 일찍 찾은 관객들은 입장을 서둘렀다.
공연 시작 40분 전에 시작되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인 진은숙 공연자문기획역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오른 진 작곡가는 쿠프랭부터 버르토크, 메시앙, 조지 벤저민, 마르코 니코디예비츠, 마이클 도허티까지 작곡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품의 주요 감상요소를 짚어가며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나갔다.
흔히 ‘어렵고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청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곁들이고 프로그래머로서 선곡의 이유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자리였다.
실내악과 관현악으로 나뉘어 매번 2회 공연되는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프로그램 ‘아르스 노바’의 올해 하반기 첫 실내악 프로그램 ‘피아노스코프(Pianoscope)’는 공연 속에 작은 피아노 리사이틀이 포함된 형태였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메이 이 푸는 첫 곡 쿠프랭의 ‘틱톡쇽’을 부드러운 터치로, 이어지는 진 작곡가의 피아노 에튀드 ‘토카타’를 강렬하게 연주하며 프랑스 바로크의 쿠프랭과 오늘날의 진은숙을 가볍게 가로질렀다.
이어진 버르토크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영적인 집중력을 요구하는 메시앙과 그의 제자로 시작해 자신만의 문법을 확립한 조지 벤저민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들은 한 호흡으로 이어지며 오늘날의 음악이 전통에 기반하는 것임을 증명해보였다.
놀라운 기교와 에너지 넘치는 연주로 메이 이 푸는 성공적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암시 혹은 부재하는 것의 현존’ 이라는 하바쿡 트라버의 해설 제목처럼 작품과 작품사이에 깔린 암시들은 의미심장했다. 10년을 맞은 아르스노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휘를 맡은 안토니 헤르무스의 열정적인 제스처를 따라 2부의 단원들은 마르코 니코디예비츠의 ‘리게티와 스트라빈스키가 함께하는 뮤직박스/자화상’을 들려줬다.
리게티와 스트라빈스키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음악적인 유산을 계승한 젊은 작곡가가 기계와 기술이 창조적인 인간의 파트너가 되어 어떻게 사용되며 표현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분히 난해할 수 있지만 아방가르드 예술과 현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새로운 영역으로 음악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젊은 작곡가의 시도에서 신선한 에너지가 전해졌다.
이날 공연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미국 출신의 마이클 도허티의 ‘독주 피아노와 앙상블을 위한 리버라치의 무덤’이었다.
함부르크에서 리게티의 제자이기도 했던 도허티가 미국인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선율, 재즈적인 특성에 유럽에서 배우고 익힌 음향적인 효과를 사용해 자유자재로 음악의 세계를 유영하며 찬란한 음표들을 마음껏 표현해낸 신명나는 곡이었다.
커다란 멜팅팟처럼 모든 요소들이 다 녹아들어가 있는 이 곡은 듣는 것만으로도 앉은 자리에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질 만큼 흥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점점 그 흥이 절정에 달했는데, 3악장 ‘시퀸(스팽글) 뮤직(Sequin Music)은 제목대로 눈부셨으며 마지막 악장 ’칸델라브라 룸바(Candelabra Rhumba)‘는 건축물처럼 쌓여온 흥겨움과 한껏 변주된 리듬이 더해져 순수하게 듣는 행위가 주는 쾌락을 선사했다.
현대음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흔한 선입견에 완벽히 빗겨난 작품이었다. 흥분에 들뜬 청중들은 오랫동안 박수를 보냈고, 박수가 이어지자 지휘자는 다시 한번 피아니스트와 함께 4악장을 들려줬다.
연주가 끝났다는 안도감, 환한 미소를 띈 단원들의 만족스러운 표정, 객석에서 전달되는 열기가 더해져 이 두번째 연주는 완전히 다른 음악이 돼 있었다. 방금 들었던 곡인데도 신선하게 들렸는데, 현장에서 직접 감상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다름’ 일지도 몰랐다.
이달부터 뷰티 그룹 ‘아모레 퍼시픽’의 후원이 더해져 앞으로 아르스노바의 프로그램에 더욱 큰 기대를 자아낸다. 그동안 한국 출신의 젊은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 해당 작품을 아르스 노바 공연 및 실내악 연주회를 통해 세계초연하며 신작 발표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수 년간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와 리딩세션(작품 리허설)의 결실로 김택수, 신동훈, 조현화, 박정규 등 재능있는 마스터클래스 참가자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국내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공동위촉(Co-Commission) 제도를 도입해 2011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단체들과 콘소시엄을 이뤄 매년 신작을 위촉하고 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과 어깨를 함께하며 ‘오늘날의 음악’을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파스칼 뒤사팽, 트리스탕 뮈라이, 페터 외트비시, 유카 티엔수 등 현존하는 최고 작곡가들의 곡이 서울에서 세계초연되는 등 음악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순간에 서울의 이름을 올린 것도 모두 아르스 노바의 공이다. ‘아르스노바’는 오는 7일 LG아트센터에서 관현악 레퍼토리로 다시 한번 청중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
◇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이자 M&A 컨설턴트다. 프랑스 파리에서 피아노·하프시코드·음악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중앙SUNDAY’, 격월간 ‘Axt’ 등에 글을 썼다.
nahui.adelaide.kim@gmail.com
공연 시작 40분 전에 시작되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인 진은숙 공연자문기획역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오른 진 작곡가는 쿠프랭부터 버르토크, 메시앙, 조지 벤저민, 마르코 니코디예비츠, 마이클 도허티까지 작곡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품의 주요 감상요소를 짚어가며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나갔다.
흔히 ‘어렵고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청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곁들이고 프로그래머로서 선곡의 이유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자리였다.
실내악과 관현악으로 나뉘어 매번 2회 공연되는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프로그램 ‘아르스 노바’의 올해 하반기 첫 실내악 프로그램 ‘피아노스코프(Pianoscope)’는 공연 속에 작은 피아노 리사이틀이 포함된 형태였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메이 이 푸는 첫 곡 쿠프랭의 ‘틱톡쇽’을 부드러운 터치로, 이어지는 진 작곡가의 피아노 에튀드 ‘토카타’를 강렬하게 연주하며 프랑스 바로크의 쿠프랭과 오늘날의 진은숙을 가볍게 가로질렀다.
이어진 버르토크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영적인 집중력을 요구하는 메시앙과 그의 제자로 시작해 자신만의 문법을 확립한 조지 벤저민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들은 한 호흡으로 이어지며 오늘날의 음악이 전통에 기반하는 것임을 증명해보였다.
놀라운 기교와 에너지 넘치는 연주로 메이 이 푸는 성공적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암시 혹은 부재하는 것의 현존’ 이라는 하바쿡 트라버의 해설 제목처럼 작품과 작품사이에 깔린 암시들은 의미심장했다. 10년을 맞은 아르스노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휘를 맡은 안토니 헤르무스의 열정적인 제스처를 따라 2부의 단원들은 마르코 니코디예비츠의 ‘리게티와 스트라빈스키가 함께하는 뮤직박스/자화상’을 들려줬다.
리게티와 스트라빈스키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음악적인 유산을 계승한 젊은 작곡가가 기계와 기술이 창조적인 인간의 파트너가 되어 어떻게 사용되며 표현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분히 난해할 수 있지만 아방가르드 예술과 현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새로운 영역으로 음악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젊은 작곡가의 시도에서 신선한 에너지가 전해졌다.
이날 공연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미국 출신의 마이클 도허티의 ‘독주 피아노와 앙상블을 위한 리버라치의 무덤’이었다.
함부르크에서 리게티의 제자이기도 했던 도허티가 미국인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선율, 재즈적인 특성에 유럽에서 배우고 익힌 음향적인 효과를 사용해 자유자재로 음악의 세계를 유영하며 찬란한 음표들을 마음껏 표현해낸 신명나는 곡이었다.
커다란 멜팅팟처럼 모든 요소들이 다 녹아들어가 있는 이 곡은 듣는 것만으로도 앉은 자리에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질 만큼 흥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점점 그 흥이 절정에 달했는데, 3악장 ‘시퀸(스팽글) 뮤직(Sequin Music)은 제목대로 눈부셨으며 마지막 악장 ’칸델라브라 룸바(Candelabra Rhumba)‘는 건축물처럼 쌓여온 흥겨움과 한껏 변주된 리듬이 더해져 순수하게 듣는 행위가 주는 쾌락을 선사했다.
현대음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흔한 선입견에 완벽히 빗겨난 작품이었다. 흥분에 들뜬 청중들은 오랫동안 박수를 보냈고, 박수가 이어지자 지휘자는 다시 한번 피아니스트와 함께 4악장을 들려줬다.
연주가 끝났다는 안도감, 환한 미소를 띈 단원들의 만족스러운 표정, 객석에서 전달되는 열기가 더해져 이 두번째 연주는 완전히 다른 음악이 돼 있었다. 방금 들었던 곡인데도 신선하게 들렸는데, 현장에서 직접 감상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다름’ 일지도 몰랐다.
이달부터 뷰티 그룹 ‘아모레 퍼시픽’의 후원이 더해져 앞으로 아르스노바의 프로그램에 더욱 큰 기대를 자아낸다. 그동안 한국 출신의 젊은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 해당 작품을 아르스 노바 공연 및 실내악 연주회를 통해 세계초연하며 신작 발표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수 년간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와 리딩세션(작품 리허설)의 결실로 김택수, 신동훈, 조현화, 박정규 등 재능있는 마스터클래스 참가자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국내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공동위촉(Co-Commission) 제도를 도입해 2011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단체들과 콘소시엄을 이뤄 매년 신작을 위촉하고 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과 어깨를 함께하며 ‘오늘날의 음악’을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파스칼 뒤사팽, 트리스탕 뮈라이, 페터 외트비시, 유카 티엔수 등 현존하는 최고 작곡가들의 곡이 서울에서 세계초연되는 등 음악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순간에 서울의 이름을 올린 것도 모두 아르스 노바의 공이다. ‘아르스노바’는 오는 7일 LG아트센터에서 관현악 레퍼토리로 다시 한번 청중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
◇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이자 M&A 컨설턴트다. 프랑스 파리에서 피아노·하프시코드·음악사를 전공했다. 월간 ‘객석’, ‘중앙SUNDAY’, 격월간 ‘Axt’ 등에 글을 썼다.
nahui.adelaide.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