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9.26 03:00
| 수정 : 2016.09.26 11:02
- 제주시에 김창열미술관 개관
92억 예산, 김 화백은 220점 기증
김 "추사와 생전 이중섭 만난 곳… 40년 물방울 그림 담을 큰 무덤"
건축, 회귀 정신 담긴 '回'자 구도

"달마대사는 면벽(面壁)해서 9년 만에 도(道)가 통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거밖에 못 하니까 물방울만 계속 그려 왔는데 도가 통하기는커녕 지금도 마누라한테 고함이나 지르고 속물다운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미술관 하나 받았다는 거는 달마대사 못지않은 보상을 받은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24일 제주시 한림읍 김창열미술관 개관식에서 달마대사처럼 긴 수염을 한 김창열(87) 화백이 지팡이에 기댄 채 도인(道人)처럼 말했다. 농담 섞인 소회였지만 화백은 '보상'이라는 단어에 잠시 목이 멨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업실 겸 거처로 쓰던 마구간에서 '물방울'을 처음 만나 지금까지 매달린 40여년이 스친 듯했다.
지난 24일 제주시 한림읍 김창열미술관 개관식에서 달마대사처럼 긴 수염을 한 김창열(87) 화백이 지팡이에 기댄 채 도인(道人)처럼 말했다. 농담 섞인 소회였지만 화백은 '보상'이라는 단어에 잠시 목이 멨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업실 겸 거처로 쓰던 마구간에서 '물방울'을 처음 만나 지금까지 매달린 40여년이 스친 듯했다.

캔버스 위에 맺힌 물방울을 그려 '물방울 화가'로 불리는 김 화백이 '물방울의 집'을 갖게 됐다. 1969년 파리로 건너간 김 화백은 몇 해 전부터 국내 미술관 건립을 타진했다가 제주와 인연이 닿았다. 김 화백이 220점을 기증하고, 제주도가 92억원의 예산을 내 도립미술관으로 짓기로 한 것이다. 초대 관장에는 김선희 전 대구미술관장이 임명됐다.
제주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평남 맹산 출신으로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때 학업을 중단했다. 강제 징집을 피하려고 월남해 경찰학교에 지원했다. 경찰 신분으로 1952년 즈음 1년 6개월간 제주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피란 왔을 때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예술)을 다시 만나게 됐고, 생전의 이중섭 선생도 여러 번 뵀습니다. 프랑스에서 45년 살았는데 그 두 분의 감동이 계속 영향 미쳤습니다. 이국 생활이 유배 생활과 다름없어 종착지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제주가 됐네요."
제주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평남 맹산 출신으로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때 학업을 중단했다. 강제 징집을 피하려고 월남해 경찰학교에 지원했다. 경찰 신분으로 1952년 즈음 1년 6개월간 제주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피란 왔을 때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예술)을 다시 만나게 됐고, 생전의 이중섭 선생도 여러 번 뵀습니다. 프랑스에서 45년 살았는데 그 두 분의 감동이 계속 영향 미쳤습니다. 이국 생활이 유배 생활과 다름없어 종착지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제주가 됐네요."

"김창열을 대변하는 작품을 골랐다. (작품을 떠나보내려니) 섭섭한 생각도 들었다"는 화백의 솔직한 심정이 말하듯 한자 위에 물방울을 그린 '회귀' 연작 등 주요작이 다 나왔다. 모든 과정을 곁에서 본 화백의 프랑스인 부인 마르틴 질롱(75)씨는 "처음 물방울을 시도한 '밤'(1972년)을 골랐을 때 특히나 남편이 아쉬워했다"고 귀띔했다. "'우리 (애들) 아빠'도 뱀띠, 나도 뱀띠"라며 익숙한 한국말을 구사한 그녀는 1970~80년대 파리로 유학 온 한국 작가들에게 된장찌개 끓여주곤 하던 '형수님'이었다.
미술관은 까만색 노출 콘크리트로 돼 있다. 송판을 일일이 찍어 가까이 가면 나뭇결이 보인다. 미술관엔 계단이 없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중정(中庭)을 감싼 경사를 타고 외부로 올라가는 형태다. 설계자인 건축가 홍재승(46·아키플랜)씨는 "김창열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개념인 '회귀'를 건축적으로 표현하기 '回'자 형태로 건물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중정에 둔 설치물 '삼신(三神)'은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다. 바위에 물방울 형태 유리를 올린 설치물이 분수를 만나 반짝인다. 김창열의 그림은 물방울 자체를 그리는 게 아니라 빛을 표현함으로써 물방울의 존재를 보여준다. 김창열의 '빛을 담은 물방울'이 건축을 만나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화백님이 40년 물방울 그림을 담을 큰 '무덤'을 만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건축가의 말을 들으니 도록 첫 장에 담긴 김 화백의 머리말이 떠올랐다. "나는 맹산이라는 심심산골에서 태어나 용케도 호랑이한테 잡아먹히지 않고 여기 산천이 수려한 제주도까지 당도했습니다. 상어한테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제주도에서 여생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물방울의 무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문의 (064)710-4150
미술관은 까만색 노출 콘크리트로 돼 있다. 송판을 일일이 찍어 가까이 가면 나뭇결이 보인다. 미술관엔 계단이 없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중정(中庭)을 감싼 경사를 타고 외부로 올라가는 형태다. 설계자인 건축가 홍재승(46·아키플랜)씨는 "김창열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개념인 '회귀'를 건축적으로 표현하기 '回'자 형태로 건물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중정에 둔 설치물 '삼신(三神)'은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다. 바위에 물방울 형태 유리를 올린 설치물이 분수를 만나 반짝인다. 김창열의 그림은 물방울 자체를 그리는 게 아니라 빛을 표현함으로써 물방울의 존재를 보여준다. 김창열의 '빛을 담은 물방울'이 건축을 만나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화백님이 40년 물방울 그림을 담을 큰 '무덤'을 만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건축가의 말을 들으니 도록 첫 장에 담긴 김 화백의 머리말이 떠올랐다. "나는 맹산이라는 심심산골에서 태어나 용케도 호랑이한테 잡아먹히지 않고 여기 산천이 수려한 제주도까지 당도했습니다. 상어한테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제주도에서 여생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물방울의 무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문의 (064)710-4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