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필 수석합격한 조성호 "정명훈 감독과 운명같은 만남 기뻐"

입력 : 2016.09.19 09:56
“제가 해온 음악과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이 과연 ‘맞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도 많아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힘들죠. 도쿄필 수석으로 뽑힌 건 그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31)가 일본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 오디션에 최종 합격한 벅찬 심경을 전했다.

이번 오디션은 서류심사와 1, 2차 오디션 등 총 세 차례의 심사 과정을 거쳤다. 세계 약 200명 가량의 연주자들이 지원, 조성호가 지난달 말 최종 오디션에서 선발됐다. 도쿄필의 클라리넷 수석 선발은 약 20년만이다. 이번 오디션의 지원자수도 역대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순혈주의가 강한 도쿄 필이라 조성호의 선발은 이례적인 일로 통한다. 현재 한국인 단원은 10년 전 바순 수석으로 입단한 최영진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종 오디션은 대부분 일본인인 전 단원 200여명의 투표로 진행됐다. 2차 오디션까지 오른 연주자는 일본인 2명, 이탈리아인 1명 그리고 조성호까지 총 4명이었다.

“일본 연주자들은 굉장히 잘해요. 짜임새 있고 질서정연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을 잘하죠. 굉장히 정확하고 스탠더드한 면이 강하죠. 제가 추구하는 건 자유로움 속에서 치밀함이에요. 그런 표현력을 좋게 보신 것 같아요.”

평소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던 조성호는 이번 오디션 이후 한동안 아팠다. “본래 어느 오디션이든 준비한다는 것이 힘들죠. 이번에는 워낙 유명한 오케스트라라 부담감은 적었어요. 물론 준비는 전투적으로 철저하게 했지만 임하는 마음가짐이 그랬죠. 그런데 몸이 부담감을 앓았나 봐요. 하하.” 1911년 창단된 일본 최고(古)의 오케스트라인 도쿄필은 HNK교향악단과 함께 현지를 대표하는 악단이다. 정기 연주회가 많은데다 발레, 오페라, 실내악 등 다른 장르의 연주 횟수도 계속 이어지는 ‘가장 바쁜 오케스트라’로 통한다. 연주자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밖에 없다.

“힘은 들겠지만 연주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좋아요. 다양하게 많은 곡들을 소화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카멜레온 같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조성호의 평소 신념이 반영된 즐거움이다.

도쿄필 클라리넷 수석은 모두 세 명. 조화도 중요하지만 오케스트라 내에서 목관 수석은 개개인의 능력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 조성호의 판단이다.

“클라리넷 솔로에서 고음이나 어려운 부분에서 좀 더 모험을 하고 싶어요. 안정적으로 가려면, 덜 세게 불거나 덜 여리게 불면 되요. 하지만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해주는 것이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나 자신을 믿고 충분히 소리를 내줘야 하죠.”

이번 도쿄필 수석으로 뽑히면서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맺어지지 않았던 인연이 끝내 이어지는 기쁨도 맛봤다. 조성호는 지난해 말 서울시향 수석 수습으로 뽑혔으나 거의 동시에 정 전 감독이 서울시향을 그만두면서 만남이 불발됐다. 하지만 이번에 조성호의 도쿄필 수석 발탁 이후 정 감독이 이 악단의 명예 음악감독이 되면서 잦은 만남이 예상된다.

“너무 신기하고 운명 같은 느낌이에요. 서울시향에서 정 감독님과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도쿄필 수석으로 뽑힌 이후 상상도 못할 소식을 추가로 들은 거죠.”

조성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임명진 사사)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벤젤 푹스를 사사했다. 또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제 음악콩쿠르 2위, 동아음악콩쿠르 1위, 클라리넷협회 콩쿠르 1위 등을 차지했다.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목관오중주단 ‘뷔에르 앙상블’은 제3회 아트실비아 실내악오디션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예정된 몇몇 연주를 소화한 뒤 2017년 1월부터부터 도쿄필에 합류한다. 그해 11월까지 ‘트라이얼’로 통하는 일종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나 단원들과 친화력을 살피는 기간으로 이미 완료된 실력 검증과는 거리가 있다. 조성호는 이미 일본어 공부에 주력하고 있다.

“클래식음악 시장이 미국 다음으로 큰 곳이에요. 공연도 많고, 음반 사업도 활성화됐죠. 초대권 개념이 없는 만큼 클래식을 즐기는 순수 청중도 많고요.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돼 기대가 커요.”

날로 발전하고 있는 조성호의 다음 목표를 물었다. “음악은 끝이 없어요. 연습도 마찬가지죠. 근데 완벽한 연주 자체는 없고. 도쿄필에 가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 구체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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