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라 vs 이지연 "여배우 아니고 배우죠"

입력 : 2016.09.05 14:06
서울시극단 선후배 '여성 햄릿' 맡아
최나라, 6년차 연극 ‘봉선화’로 주목
이지연 작년 56 :1 뚫은 당찬 신인
연극 '함익' 세종문화회관 30일 개막
“여자라는 수식에 크게 신경을 안 써요. 인물에만 집중할 수 없거든요. 자칫 최나라의 사견이 들어올 수 있죠. 인물을 만나는 시간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좋은 기회이고, 큰 역할이니 인물에 집중하고 싶어요.”(최나라)

여전히 남자 배우는 배우, 여자 배우는 ‘여’배우로 통하는 시대. ‘여자 햄릿’을 내세우는 서울시극단 연극 ‘함익’(9월30일부터 10월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이 주목 받는 건 당연하다.

최근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타이틀롤 최나라(36)는 하지만 ‘여성’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미니멀리즘의 귀재’ 연출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과 ‘재창작의 귀재’인 작가 김은성이 ‘햄릿’을 재해석했다. 그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재해석됐지만 ‘햄릿’ 만큼은 남자의 골격을 유지해왔다. ‘함익’에서 함익이라는 이름 단 현대판 여성 햄릿은 30대의 재벌 2세이자 대학교수로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이다.

최나라는 그러나 “‘남자가 이렇게 연기했으니, 나는 다르게 이렇게 연기해야겠다’ 같은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고독과 내면의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함익’은 인류 최고의 비극으로 통하는 셰익스피어 ‘햄릿’의 심리적 고독에 주목한다. 웅장한 서사를 후로 밀어내고 행간에 숨어 있는 햄릿의 심리와 고독, 그리고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있는 그의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앞서 2011년 서울시극단이 정기공연으로 선보인 ‘햄릿’(박근형 연출)에서 ‘오필리어’를 연기하기도 한 최나라는 ‘함익’이 ‘햄릿’과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했다. “‘햄릿’ 속 인간의 고독을 모티브로 따와 새롭게 플롯을 짜고, 흐름이나 인물의 구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에 객원으로 참여하는 대학로 스타 윤나무가 맡은 ‘연우’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그는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흔드는 연극청년이다. “창작은 캐릭터에 생명력과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라 설렌다”고 웃었다.

‘햄릿’에서는 아버지가 살해당하지만 ‘함익’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한국은 유난히 엄마와 딸의 관계가 긴밀하잖아요. 함익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갖는 분노와 슬픔에 충분히 공감했어요. 몸이 아파서 죽은 것이 아닌, 상처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예요.”

지난해 7년 만에 모집한 서울시극단의 신입단원 오디션에서 56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신입 단원 이지연(23)이 함익의 분신을 연기한다. ‘지킬 앤 하이드’의 하이드처럼 함익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지연은 그간 ‘햄릿’을 여러 차례 읽었지만 배우로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한다. “처음에는 ‘햄릿’의 고독에 잘 공감을 못했어요. ‘이런 이야기기가 가능한가’라고 생각했는데 ‘함익’을 접하고 나서 햄릿과 함익의 고독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정말 혼자 외로운 나머지, 미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쓸쓸했을 것 같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죠.”

밝은 에너지로 무장한 그녀는 “분신은 함익의 내면이자 자아 또는 속마음이 될 수 있다”며 “억압된 상태에서 분신을 만나면 자유로워진다”고 소개했다. “함익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픔도 주고, 복수에 대한 두려움도 주고. 친구 같기도 하고, 못된 악마 같기도 하고. 함께 즐겁게 놀기도 하고 그래요”라고 전했다.

다양한 면모를 보여야하기 때문에 분신은 순식간에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연습할수록 재미있다”고 신예다운 패기로 싱글벙글이다. “대본 속에 숨은 의미들을 찾아가는 것이 흥미진진해요.”

2008년 서울시극단에 입단한 최나라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봉선화’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여자 정단원이 거의 없는데다가, 막내 생활을 꽤 오래했다. 이지연이 들어왔을 때 반색한 이유다. “14세 차이가 나지만 지연이랑 언니, 동생을 하고 싶었는데 이 친구가 너무 예의가 바른 거예요.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같이 하면서 분신처럼 더 가까워졌어요.”

매번 최나라 품에 안기면서 인사를 한다는 이지연은 “아직 아무것도 몰라, 선배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며 눈빛을 총총거렸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서울시극단은 지난해 김광보 연출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축 배우' 최나라, '떠오르는 배우' 이지연의 이번 활약이 큰 힘을 싣을 것으로 보인다.

최나라는 “창단 이후 쭉 계신 선배들을 보며 과거의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 시간들이 소중하다"고 연륜을 보였고, 이지연은 “서울시극단에 들어온 것 자체가 영광이죠. 선배들이 지켜온 것을 잘 받아서 우리 극단을 좀 더 알리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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