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마음의 아카이브: 태평양을 건너며'

  • 박민선 에디터

입력 : 2025.08.06 11:11

●전시명: '마음의 아카이브: 태평양을 건너며'
●기간: 8. 28 ─ 10. 4
●장소: 아뜰리에 아키(서울숲2길 32-14)
Flowers and Islands, 2023, acrylic, oil on canvas, 76.2x60.9cm. /아뜰리에 아키
Lake day, 2024, acrylic, oil on canvas, 76.2x101.6cm. /아뜰리에 아키
 
아뜰리에 아키는 오는 8월 28일부터 10월 4일까지 시애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임현정의 개인전 《마음의 아카이브: 태평양을 건너며》를 개최한다. 임현정은 손끝의 즉흥성과 무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직관적 드로잉(Intuitive drawing)’을 통해 가시화되지 않지만 인식되는 감정이나 기억, 상상 속의 공간을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풍경으로 재해석해 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한국과 미국 서부, 유럽을 오가며 축적한 삶의 경험과 내면의 변화를 작가 고유의 직관적인 드로잉과 회화적 언어로 응축해 펼쳐 보이는 여정을 담은 회화 작품 20여 점으로 구성된다.
 
임현정의 작업은 선형적(線形的) 또는 논리적으로 기억이나 경험을 배열해 저장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결된 이야기나 단일한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과 감각, 감정과 꿈을 기반으로 유동적(流動的)이고 비선형적(非線形的)으로 구성된 열린 구조로서 화면을 전개한다. 한 화면 위에 병치(竝置)되는 생명체, 이질적 존재, 일상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은 일견 무관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기적 연결성과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이는 관객이 작품 앞에서 특정 지점을 응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마음결과 흐름에 따라 화면 전체를 천천히 유영하며, 각자의 경험으로 새로운 연결고리와 의미를 발견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특별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특히 임현정의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섬과 바다의 이미지는 고립과 연결, 유동성이라는 양가적 성질을 동시에 품고 있다. <마음의 섬들> 시리즈 속 감정과 기억의 파편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심층적 물의 흐름처럼 서로 얽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 또한 유사한 파편과 연결 구조를 가질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Point Bonita Trail, 2025, acrylic, oil on canvas, 60.9x60.9cm. /아뜰리에 아키
 
전시 제목 ‘마음의 아카이브’는 2018년부터 미국 서부에 거주하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가가 겪었던 다양한 사건, 심리적 파장, 그리고 문명과 문화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단편들을 아카이브, 즉 내면적 기록 또는 저장 창고처럼 화면에 집적(集積)해 온 작가의 작업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한국과 런던 그리고 유럽에서 쌓은 문화적 자산과는 또 다른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의 자연환경, 다층적 커뮤니티, 그리고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감정의 결에서, 임현정은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지난 2020년 《Strangers in a Strange World》 (2020, 샌프란시스코) 개인전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다양성, 복합적인 이방인의 감정을 실험적으로 가시화하였으며, 2025년 시애틀 개인전 《Trip West》(2025, 시애틀)에서는 미국 서부 국립공원의 광활함과 압도적 자연을 모티브로 실재와 상상, 즉 실존하는 풍경과 내면 풍경의 경계를 새로운 상상의 영역으로 구축했다. 이러한 작가적 고찰은 북유럽 르네상스 거장 히에로니무스 보쉬 (Hieronymus Bosch)와 피터 브뤼겔 대 (Pieter Bruegel)에 대한 오마주 (Homage)이자, 동양 산수화의 몽환적 이상향과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을 교차시키는 회화적 실험으로 이어지며, 신화와 현실, 개인의 역사가 화면 위에서 자유롭게 뒤얽힌다.
 
Trip West, 2023, acrylic, oil on canvas, 121.9x274.3cm. /아뜰리에 아키
 
부제 ‘태평양을 건너며’는 단순히 지리적 이동과 변화의 표상이 아니다. 201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USA)에서 개최된 《Thomas Cole's Journey: Atlantic Crossings》 전시에서 영감받은 이 부제는, 19세기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며 고전적 회화 전통과 신대륙의 자연을 창의적으로 융합시킴으로써 미국 풍경화의 독자적 미학을 새롭게 정립한 토마스 콜 (Thomas Cole)과 같이, 임현정 작가가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한국 미술의 안과 밖, 동서양의 전통과 현대, 그 교차점에 선 존재로 거듭나고자 했던 작가의 치열한 태도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임현정 작가의 작품 속 자연의 스케일, 빛과 날씨, 해안선의 풍경은 실제 여행을 통해 경험한 감각이자, 동시에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같은 동아시아 회화에 내포된 이상향의 꿈과 환상에 대한 회화적 해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마음의 아카이브: 태평양을 건너며》는 정형화된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라, 계속해서 흐르고 확장되는 임현정의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며, 삶과 예술, 현실과 상상, 자신과 타인이 만나는 지점에서 진정한 회화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화면에 구축된 작가의 사적인 내면의 이미지들은 관객 개개인의 해석과 감정을 이끌어 새로운 아카이브로 재구성될 것이며, 나아가 인간이 가진 각자의 문화적 배경과 내면의 풍경이 낯설지만,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관객들은 이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감정 지형과 내면의 전이를 새롭게 발견하는 아카이브의 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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