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남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

입력 : 2016.08.25 13:24
울끈 불끈 남성 무용수들속
발레리나 김지영·김리회 눈길
청초하고 섹시함 팜파탈 대결
국립발레단 국립극장서 26일 개막
발레리노들의 꿈틀대는 근육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가 ‘짐승남’ 남성무용수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영웅적 카리스마로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에너지를 뽐내는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로마장군이라는 배경에도 노예 스파르타쿠스를 이기지 못해 분노를 표출하는 ‘크라수스’의 휘몰아치는 대립에 숨통을 만들어주는 것이 발레리나들이 맡는 ‘프리기아’와 ‘예기나’다.

헌신적이며 비극적인 청초함을 지닌 프리기아와, 교활하고 섹시한 팜 파탈 예기나는 ‘스파르타쿠스’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국립발레단이 4년 만인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이번 ‘스파르타쿠스’에서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김리회가 프리기아를 연기한다. 2012년에도 같은 역을 연기한 이들이다. 김지영은 국립발레단이 2001년 ‘스파르타쿠스’를 아시아 초연했을 때도 이 작품에서 프리기아를 연기했다. 당시 “절정의 매혹으로 빛났다” 등의 평을 받았다. 당시 주역 중 남아 있는 무용수는 김지영 뿐이다. 이번에 스파르타쿠스 역의 이재우·정영재·김기완, 크라수스 역의 박종석·허서명·변성완이 이 작품의 얼굴이라면 역사를 함께 해 온 김지영은 상징이다.

24일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만난 김지영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지만 이런 작품을 레퍼토리로 갖고 있는 발레단은 많지 않다”고 설레했다.

“초연 당시 3개월 동안 유리 그리가로비치 선생님과 연습했던 기억이 나요. 무척 열심히 했던 만큼 추억도 많았고요. 이런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올라간다는 자체가 당시에는 기적 같은 일이었거든요.” 발레리노만 45명이 등장하는 이 대작(大作)은 대하사극을 방불케 한다. “초연 자리에 있었던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김지영과 이번에 호흡을 맞추는 파트너는 이재우(26). 지난 23일 한국 초연 당시 스파르타쿠스를 맡았던 발레리노 이원국(49)이 응원 차 연습실을 찾았다. 이 두 사람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하니 기분이 묘했다는 김지영은 “만감이 교차하더라”고 웃었다.

김리회는 2007년 당시 만 19세로 국내에서 역대 최연소 예기나를 맡아 화제가 됐다. 2012년 때 프리기아를 연기했고 이번에 프리기와 함께 예기나를 번갈아 연기한다. 이 상반된 역을 한 발레리나가 맡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다.

올해 국립발레단의 또 다른 대표작 ‘라 바야데르’에서도 상반된 역인 니키아와 감자티를 연기했던 김리회는 “워낙 대작이다 보니 한 역할만 해도 힘든데 두 역을 동시에 하려니 벅차다”고 했다. “게다가 워낙 캐릭터가 상반돼서 정신이 없어요. 호호. 클래식 발레는 그나마 낫지만 ‘스파르타쿠스’는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 더 힘들어요.”

예전에는 청순한 매력의 프리기아가 자신과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요염한 매력의 예기나가 더 끌린다고 싱글벙글이다. “제가 무대 위 모습은 청순하고 얌전한데 실제 그렇지는 않거든요. 좀 더 활발하고 쾌활하죠.”

프리기아만 연기한 김지영이지만 무대 위 그녀의 섹시한 표정 때문에 예기나도 덧없이 잘 어울릴 듯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지만 프리기아도 진짜 섹시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요염과 관능만 섹시함의 전부가 아니죠.”

‘스파르타쿠스’는 1956년 레오니드 야콥슨 안무의 작품으로 선보였다.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1968년 대거의 남성 무용수들을 기용, 역동성·웅장함·비장미를 배가했다. 구순에 가까운 그리가로비치는 이번에도 내한, 한국 무용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지영은 초연 때 추억을 떠올리며 “정말 특별하신 분이에요. 노령에도 이 먼 길을 오는 것 자체가 대단하시죠. 기억력도 엄청나세요. 선물을 받으신 분 같아요”라고 말했다.

2007년 ‘스파르타쿠스’ 공연 당시 그로가비치를 처음 만난 뒤 2008년 참가한 ‘모스크바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자격으로 그를 재회했던 김리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국립발레단 간판인 김지영과 김리회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부임한 이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이 발레단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올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공연, 신작 ‘세레나데’ 무대,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인 ‘KNB 무브먼트 시리즈’ 등에서 활약이 눈부셨다.

김지영은 무용수들의 무용수로 통한다.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 2007년 승급무용수로 승급해 활동하다 2009년 한국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온 그녀는 워싱턴발레단으로 이적한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이은원 등이 롤모델로 삼고 있다.

“후배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춤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거든요. 춤을 더 잘 추고 싶어서 네덜란드로 갔죠. 사실 조언을 한다는 자체가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호호호. 그냥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겠죠. 하지만 결국 춤을 좋아하는 마음이 힘든 일을 잊게 만들더라고요.”

2006년 입단 때 18세 4개월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단원의 기록을 썼던 김리회는 어느덧 발레단에 들어온 지 10주년을 맞았다. “어렸을 때는 사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주어진 역만 열심히 했거든요. 다행히 언니들 보면서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죠.”

김지영은 그녀의 롤모델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많이 가르침을 받아요. 언니 덕분에 재미있게 발레를 하고 있죠. 근데 예기나도 그렇고, 작품마다 언니의 상대역을 많이 했네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언니가 ‘카테리나’, 제가 ‘비앙카’였으니까요. 이렇게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김지영은 “너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할 거야!? 호호.” 김지영과 김리회가 마주보고 다정하게 웃었다.

한편 이번 프리기아 역에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슬기도 캐스팅됐다. 예기나는 박슬기와 함께 솔리스트 신승원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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