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고 달콤하네, 무대에 배어난 문학의 향기

입력 : 2016.08.25 02:43

[뮤지컬 리뷰] 키다리 아저씨

부유하고 잘생긴 데다 마음도 착한 남자 주인공이 있고, 가난하지만 당차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이 있다.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줄곧 여자를 도와주고, 몇 차례 위기를 거쳐 두 사람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무슨 얘기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온갖 한국 TV 드라마의 기본 틀로 익숙한 내용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나온 원전 격의 소설과 만나게 된다.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다. 한국에서 공전의 인기를 끌었던 1970년대 일본 만화 '캔디 캔디'의 구성도 사실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고아원에서 시작해 후원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데서 끝나는 줄거리를 생각해 보자).

그러니 2009년 캘리포니아에서 초연된 미국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존 캐어드 극본, 폴 고든 작곡, 넬 발라반 연출)는 여성 관객의 순정만화적 로망에 부응하는 작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실제로 많은 팬이 기다려 온 뮤지컬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 무대에서 라이선스로 초연의 막을 올린 이 작품은 담백하고 서정적이며 연극 무대에 가까운 데다 문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 스타일의 이인극(二人劇)이었다.

‘키다리 아저씨’에서 각각 키다리 아저씨와 제루샤를 연기하는 신성록(왼쪽)과 이지숙. /달컴퍼니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각각 키다리 아저씨와 제루샤를 연기하는 신성록(왼쪽)과 이지숙. /달컴퍼니뮤지컬

여주인공 제루샤가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에게 쓴 서간문으로 극의 대부분이 이뤄지는 것은 소설과 같지만, 뮤지컬은 애초부터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를 밝혀 그가 편지를 읽은 뒤 어떻게 반응하는지 원작에 없는 장면을 상세히 묘사한다. 당혹감에 빠지거나 질투심에 사로잡혀 제루샤를 만나기 위한 온갖 치졸한 술책을 꾸미는 인간적인 모습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결국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20세기 초 미국 대학을 다니며 인문학 교육의 감화(感化)를 통해 성숙을 이루고, 그를 후원한 남주인공이 그 성장에 감동받는 이야기다. 자신의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는 피그말리온 신화의 지적(知的) 버전인 셈이다. "행복이란 미지의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라고 (대학에서) 배웠죠"라는 내용의 삽입곡 '행복의 비밀' 등이 첼로와 키보드 반주를 통해 잔잔하게 객석으로 파고든다.

▷10월 3일까지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연 시간 135분,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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