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소년'서 지휘자로 돌아온 김건 "한국 동경했어요"

입력 : 2016.08.23 15:05
美 오리건 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동
25년만에 귀국 "클래식음악 시스템 만들고 싶어"

“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한국을 동경했어요. 한국은 뛰어난 음악가분들이 모인 곳이라 생각해서 함께 참여를 하고 싶었죠. 이곳에서 제 능력과 기질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2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젊은 지휘자 김건(35)의 눈빛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뒤섞여있다. 한국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1991년 11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한 뒤 지휘자가 되어 귀국했다. “음악에 집중을 하느라 한국에 올 겨를이 없었어요.

부모와 미국에 사는 그는 지인의 집인 창원에 머문 채로 서울을 오가며 한국 곳곳을 돌아보고 있다. “한국 드라마, TV 쇼 등을 많이 봐서 낯설지는 않아요. 항상 한국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음악학원 등을 운영한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네 살 때 피아노를 접한 그는 다른 아이들이 잘 고르지 않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본 부모가 이민을 결정하면서 미국에 새 둥지를 틀었다.

커티스 음악원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하고 졸업 때 최고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프리츠 크라이슬러 상’을 받았지만 김건은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지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지휘자는 지휘봉만 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바이올린을 열심히 한 이유는 솔리스트로서 분명히 서야 지휘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커티스 음악원 재학 당시 바이올린 연습도 열심히 했지만 도서관에 틀어 박혀 살았죠. 계속 악보를 보고, 음악 이론과 역사 등을 계속 공부했어요.”

그러다 18세에 첫 지휘 기회가 생겼다. 하윅 컬리지 서머 뮤직 페스티벌에서 그를 바이올린 연주자 겸 선생으로 초청을 했는데 그가 지휘하는 걸 조건으로 내걸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라고 웃었다.

이후 수많은 지휘자의 어시스턴트를 거치며 지휘자로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지휘자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로린 마젤이다. 2007년께 그가 페스티벌을 열면서 오케스트라 등에 함께 할 젊은 지휘자를 뽑았는데 그가 포함된 것이다.

“제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제가 보통 사람과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 다른데, 마젤 선생님이 이미 제가 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전까지 불안했는데 안심이 됐죠.” 그러다 2013년 유명 악단인 오리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발탁되면서 지휘자로서 이름을 드높이게 됐다. 미국 서부 지역의 여러 악단 중에서도 역사가 깊은 이 오케스트라는 바로크, 낭만, 현대 등 유연한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건은 10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30대 아시아인으로서 드물게 이 악단의 지휘봉은 들었다. 최근 이 악단의 포디엄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지난 3년 동안 음악감독을 보좌하며 지휘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했다.

“오리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악단이에요. 해마다 레코딩을 할 정도로 연주력도 탄탄하죠.”

이후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볼티모어 심포니 등을 객원 지휘한 김건은 여러 악단을 거치면서 음악감독의 자질이 무엇인지 느끼고 배우게 됐다고 했다.

“음악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재정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악단의 음악적인 리더일 뿐만 아니라 악단이 위치한 지역의 예술인 리더로서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다양한 직종의 여러 사람들을 많이 만나 현장 경험을 쌓았죠. 해당 지역의 지휘자라고 하면 그 지역의 예술뿐 아니라 그곳 자체를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야 음악 애호가분들을 많이 만들 수 있죠.”

세계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출신 연주자는 많지만 지휘자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아시아인을 리더로 여기는 것이 아직 쉽지 않은 미국 사회에서 김건 역시 힘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의연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이 없어요. 만약 제가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걸 인종 탓으로 돌리면 게을러질 수밖에 없어요. 핑계거리가 생기니까요. 한탄보다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최대한 오차를 줄이려고 했죠.”

3년마다 한번 열리는 ‘브루노 발터 국제지휘자 프리뷰’의 올해 행사에서 떠오르는 신진 지휘자로서 미국 전역에 소개되기도 한 김건은 그곳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뉴욕시티오페라단을 이끈 데이비드 에프런 등을 사사하는 등 정통 코스를 밟은 그는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결국 콘서트홀이든, 오케스트라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저도 좋아하는 K팝이 미국 내에서도 인기인데 K팝처럼 빠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클래식에도 필요하다고 봐요. 베토벤의 진리를 알고 잘 해석해도 청중과 교감이 빠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더 많은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거든요.”

역시 변화가 계속 생기는 클래식음악계에서 그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클래식 음악계에 친밀도를 높일 계획이다. “지금 두각을 나타내는 연주자라도 그걸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죠. 한국뿐 아니라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든 클래식 음악 시장이 마찬가지에요. 좋은 분위기를 오래 유지하고 그걸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미국에서 쌓은 경험이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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