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이기적인 인간 群像, 너무 친근해서 섬뜩한

입력 : 2016.08.18 03:00   |   수정 : 2016.08.18 10:15

글로리아

연극 '글로리아'(사진·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 작, 김태형 연출)는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런 풍경일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의 단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 뉴욕의 한 잡지사 편집실, 반복되는 생활에 지친 기자들이 불만으로 가득 찬 대사를 속사포처럼 늘어놓는다. 동료들 몰래 출판 제안서를 쓰고 있는 딘(이승주)이 있고, 끝없이 그에 대해 비아냥대며 틈만 나면 스타벅스에서 농땡이를 치는 켄드라(손지윤)가 있다. 아이비리그 출신인데도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인턴사원 마일즈(오정택)는 자기 일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은 없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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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한 대화 속에서 모두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오래된 직원 글로리아(임문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가 실제로 등장하면서 극 분위기는 돌연 미묘해진다. 다른 인물과는 달리 그녀는 좀처럼 리액션이 없고, 긴 침묵 끝에 독특한 억양으로 몇 마디 어긋난 듯한 대사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녀가 두 번째로 무대에 등장하면서 연극의 전개는 관객이 짐작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바뀐다. 글로리아의 손에 들린 것은 권총이었다.

32세인 미국 작가 제이콥스-젠킨스가 쓴 이 작품은 어느 사회에서나 비슷하게 펼쳐질 것 같은 인간 군상(群像)의 이기적인 모습을 해부한다. 연극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관계망은 심술궂을 정도로 신랄하고 예상치 못할 만큼 충격적이다. 모두가 경쟁하는 시스템 속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은 아이들만큼이나 유치하고, 평소엔 관심조차 없었던 인물을 적절히 활용해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행태는 저열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먼 곳에 존재하는 악인들'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근처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극 중 인턴이 날리는 "여긴 다들 너무 힘들고 불행해 보여요"라는 일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올해 초연된 소극장 연극 중에서 재미와 충격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이다.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공연 시간 140분, 070-4141-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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