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 지휘, 뜨겁게 감사하죠"

입력 : 2016.08.16 18:15
8개월 만에 국내 포디엄에 오르는 정명훈(63)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여전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후 28년 만에 서울에 들어서는 클래식음악 전용홀인 잠실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을 앞두고 16일 오전 언론에 공개된 이곳 첫 리허설 현장에서 변함없는 열정을 과시했다.

개관 공연 당일 서울시향과 함께 연주할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4악장의 웅장한 파이프3 오르간 소리는 물론 단원 100여명의 연주 소리 하나하나를 노련하게 다듬어나갔다. 5000여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은 객석에서 바라볼 때 오른편에 자리 잡은 오르간에 연결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무대 바닥에 설치된 20개 조각의 리프트는 연주자들의 높낮이를 조정, 정 전 감독의 시야를 쉽게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향 송년 대표 레퍼토리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이후 서울시향과 처음 호흡을 맞춘 정 전 감독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며 단원들을 다독였다. 입으로 선율의 템포와 강약을 조절하는 습관도 여전했다. 이번 연주의 녹음을 진행하는 프로듀서 마이클 파인, 롯데콘서트홀 음향을 설계한 도요타 야스히사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리허설 도중 만난 정 감독은 다시 한국 청중과 만나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그 이상의 말은 더 나올 수가 있나. 일평생 한국에서 연주했는데 감사할 수밖에 없다. 굉장히 뜨겁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지난달 횡령 혐의 의혹 건으로 국내에서 경찰 조사 등을 받았던 정 전 감독은 이후 콘서트 일정 등으로 약 3주간 외국에 머물렀다 지난주 귀국, 광화문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준비해왔다. 앞서 경찰은 이달 초 정 전 감독의 항공료 횡령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 내리면서 어깨에 짐을 던 상황이다.

횡령 의혹 등으로 겪었을 그간의 어려움을 묻자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했다고 생각 안 한다. 반대로 배운 것이 몇 가지 있다"고 했다. "진짜 훌륭한 음악을 만들려면 사람이 좋아져야 한다. 이제 우리도 잘사는 나라가 됐다. 기술적인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휴먼 퀄리티'도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음악이 나온다." 한국 청중의 뜨거움에 대해 외국 오케스트라에 자랑한다는 그는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해왔는데 이제 더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콘서트홀은 국내 첫 '빈야드(vinyard) 스타일' 공연장이다. 빈야드는 '포도밭' '포도원'이라는 뜻으로 포도밭처럼 홀 중심에 연주 무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2036석 어느 곳에서든 음향이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 전 감독과 서울시향은 19일 이 콘서트의 개막공연을 이끈다.

정 전 감독은 롯데콘서트홀에 대해 "음향이 훌륭하다. 첫 리허설이라 조정할 것이 많지만 제 생각에는 충분히 훌륭한 홀"이라며 "우리나라에 이런 홀이 생긴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주자의 기량이라고 했다. 25년 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지휘를 했을 때 떠올리며 "진짜 숙제는 연주자에게 있다"고 했다.

롯데콘서트홀의 정확한 특징을 말하기 위해서는 1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홀이라도 완벽한 소리를 내려면 조정이 필요하다. 청중이 차 있을 때는 다르니까. 계속 찾아야 한다. 우리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연주할 때 "'이런 걸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작곡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음악을 살릴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책임이다. 목적은 하나다. 그날 특별히 음악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진행하는 음반 녹음은 오케스트라 발전에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보통 연주 준비하는 것보다 몇배는 더 준비해야 한다"며 "오케스트라에 매우 큰 훈련과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역시 레코딩(음반 녹음)을 해서 이만큼 (수준이) 올라갔다. 올라가는 것은 지독히 힘들다"고 했다.

서울시향 예술감독 복귀에 대해서는 "예전에 농담처럼 60세 되면 그만두겠다고 했다"며 "사실 (예정보다) 2년 늦게 그만둔 거다. 다시는 그런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음악을 그만두는 건 아니다. "다른 건 할 줄 모른다. 하하. 음악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책임을 지면 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음악으로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계속 찾고 있다. 쉬운 것은 누가 도와달라고 말한다. 시향도 도움이 필요하면 안 도와주겠나. 하지만 시향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다른 사람하고 해야 한다. 그래도 도움은 줄 생각이다."

한국의 다른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맡을지에 대해서는 "그런 책임은 말고 객원 지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때그때 판단하겠지만 나라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할 생각"이라고 했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 명예훼손 혐의 건 등으로 진행 중인 검찰 조사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가치가 없다"며 "(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 다시 말하자. 그때 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정 전 감독은 최근 검찰, 경찰 조사 등에서 미디어에 밝힌 말이 오해를 사기도 했다. "밤늦게 검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분들에게 불쌍하다고 했는데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 한국말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 영어가 제일 편하고 불어도 편하고 이탈리아어도 편한데 넷째가 한국어다. 인터뷰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지만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것이 많다는 걸 이해하고 이렇게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주 서울시향과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날 '뮤직 이스 마이 라이프'라고 말했던 정 전 감독은 "굉장히 거창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시향과 10년을 함께 했는데 외국에서 그렇게 오래 하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온리 뮤직'이라는 걸 이해해주고 받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 전 감독과 서울시향은 개관 공연에서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인 진은숙의 세계 초연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도 선보인다. 정 전 감독이 어렵다고 웃은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혼성 합창단과 어린이합창단, 오르간이 포함된 대 편성 관현악곡이다.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롯데콘서트홀이 공동 위촉했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 Op.72a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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