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빈 "연극은 매너리즘 깨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

입력 : 2016.08.16 09:35
라이선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서 1인 다역
TV 귀족풍 이미지 벗고 어리바리 코디디 도전
"40대 되니 마음 편해져…노련한 배우 되고파"

"연극은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어 매너리즘을 깨요. 연극 출연은 제 안의 작은 저항이거든요. 정체돼 있지 않기 위한 저와의 싸움이죠."

탤런트 배수빈(40)이 연극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라이선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연출 김태형·9월1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전의 이미지와는 다른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1923·1934·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3편의 옴니버스로 그린다. 각 편은 러닝타임이 60분이 넘는 한 공연이다. 배우들은 한꺼번에 세 작품에 출연하는 셈이다. 체력 소비도 상당한데, 캐릭터 역시 만만치 않다.

배수빈은 인기 절정의 쇼걸 '롤라 킨'의 결혼식 전날 그녀를 둘러싸고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끝없는 살인을 다룬 코미디 '로키'에서 어수룩한 회계사와 형사 등 1인 다역을 연기한다.

조직의 2인자인 '닉 니티'가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파국을 맞이하는 서스펜스 '루시퍼'에서는 닉 니티,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에게 화려한 복수를 계획하는 경찰 빈디치의 이야기를 그린 하드보일드 '빈디치'에서는 두스를 맡았다.

배수빈이 '로키' 같은 코미디물에 출연하는 건 드문 일이다. 단정한 외모로 빈틈 없는 캐릭터를 연기한 그가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인다. 경쾌한 춤도 선보인다. "저 역시 무대 위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로키' 때문에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초반에는 1인 다역을 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원래 동시에 여러 작품을 못 해요. 한 캐릭터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로키'를 하면서 한번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적응하고 있죠."

'루시퍼'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니티는 배수빈이 그간 연기해온 캐릭터의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다른 것(TV ·영화의 편집이나 무대 효과)에 기대지 않고 연기 자체만으로 70분을 끌고가야 하니 긴장감이 상당하더라"고 털어놓았다.

'빈디치'의 두스는 배수빈이 지금껏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악랄하다. 경찰 간부지만, 각종 부정을 저지르고 있고 은밀한 성적인 취미도 있다. "비열한 캐릭터인데 나도 모르는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하하."

'카포네 트릴로지'의 또 다른 특징은 무대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정확히 나눠진 기존 프로시니엄(액자 형식) 구조가 아니다. 관객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도록 객석이 50석씩 배치돼 있고 그 가운데 무대가 있다. 배우들이 뒷모습까지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과 몸이 부딪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소극장에서 연기를 해봤지만 이처럼 관객들과 가까운 건 처음이라 초반에 어려웠어요.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과 에너지가 바로 전달되니 신나게 몰입할 수 있더라고요. 관객들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연극이죠"라며 싱글벙글이다.

배수빈은 2002년 중국 CCTV '기억의 증명'으로 데뷔했다. 어느덧 15년 차. 2007년 '다리퐁 모단걸'을 시작으로 연극 출연도 꾸준히 병행해왔다. TV 드라마를 통해 자상한 실장님 또는 중후한 귀족 풍의 이미지를 주로 선보인 그는 무대에서는 숨겨온 얼굴을 꺼내보였다.

"연극은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부딪혀 나가려고 하죠. 제가 버퍼링이 긴 편이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라는 겸손이다.

하지만 1000만 관객이 넘은 동명의 영화가 바탕으로 왕과 광대 1인2역을 연기한 '광해, 왕이 된 남자',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아가는 성소수자를 연기한 '프라이드' 등에서 그는 새로운 캐릭터의 옷을 완벽하게 입었다.

"컴퓨터 효과가 다양해지고 스마트폰 등 볼거리가 많아지면서 배우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어요. 지난해 본 '카포네 트릴로지' 국내 초연은 그 과정에서 '컬처 쇼크'였죠."

배수빈은 2013년 결혼, 이듬해 아들을 얻었다. 올해 만으로 마흔살. 최근 17세짜리 장애인 아들을 둔 '킬 미 나우'의 아버지, 사랑하는 아내와 위험한 자신의 일을 두고 고민하는 '루시퍼'의 가장 역에 진심이 묻어나는 이유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연기하기가 편해졌다고 할까요. 결혼 이후 이런 역들을 연기할 때 굳이 억지로 끌어올릴 필요가 없었죠. 정서적으로 밟을 수 있는 계단이 여러개 생긴 거예요."

화려한 외모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배수빈은 내내 거듭 자신은 평범하다고 여겼다. "제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한 때는 특별해지는 것을 꿈 꾼 적도 있죠. 근데 그 순간, 제 삶과 연기의 괴리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난 특별하다'라는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노력 중이에요. 배우를 오래오래 하고 싶은데 그래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죠."

남자 배우의 전성기는 40대. 배수빈 역시 이 나이대에 접어드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여유감을 보였다. "열정과 노력, 노련함이 잘 공존할 수 있는 나이대라고 생각해요. 40대를 잘 보내서 50, 60대는 좀 더 노련해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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