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서선영]
바젤 극장 입단, '루살카'로 데뷔… 유럽 오페라 주역으로 자리매김
지난달 고향 합창단 특별공연 서 "최선 다하니 꿈꾸던 순간 왔죠"
21일 지휘자 정치용과 콘서트

스물일곱 살이던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린 소프라노 서선영(32). 불과 한 달 뒤 스위스 바젤 국립극장에 전속 가수로 입단하자마자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의 루살카 역으로 유럽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바그너의 '로엔그린'과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등 주요 오페라 주역을 차곡차곡 꿰차며 프리마 돈나(여성 주역 성악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달 1일, 서선영이 찾은 무대는 고향인 경남 창원의 실내체육관이었다. 창원시가 시민의 날을 맞아 창원체육관에서 연 축하 행사에 테너 정의근과 올라 '축배의 노래'를 불렀다. "어릴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공부해라!'였어요. 노래하는 걸 진짜 좋아했지만 돈 많이 든다고 반대하신 부모님은 제가 노래를 부르면 피아노 뚜껑을 닫아버릴 정도였죠. 그래도 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 들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신나게 노래했어요. 다달이 3만5000원씩 월급도 받고요(웃음)."
고향 무대에 다시 선 게 꼭 15년 만이다. 고교 3학년이던 2001년 합창단 정기 연주회에 특별 출연해 이탈리아 가곡 '입맞춤'을 부른 게 마지막이었다. 막상 무대에 오르니 떠오르는 장면은 콩쿠르 1등 하던 날도,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날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대로 매일 라인 강변에 나가 목청을 틔우고 스트레칭하던 때가 생각났어요. 최선을 다한 하루하루가 모여 내가 꿈꾸던 지금을 만들었구나 싶었죠."
지난 5월 국립오페라단이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한 '루살카'에서 서선영은 풍성한 발성과 또렷한 발음으로 사랑에 배신당한 물의 요정이 잔혹한 죽음으로 내달리는 비극을 탁월하게 살려냈다. 그녀가 깨달은 노래의 핵심은 '진심'이었다.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가슴으로 소화해 몸이 내는 소리를 기교가 이길 순 없더라는 것. "독일 뒤셀도르프 음대에서 '수녀 안젤리카'란 오페라를 할 때, 아이가 죽은 걸 알고 슬퍼하는 안젤리카의 아리아를 진짜 제 얘기인 것처럼 목놓아 불렀더니 나중에 사람들이 물어봤어요, 아기가 죽은 적이 있냐고. 그때부터 오페라를 공연하는 3시간만큼은 한 편의 진한 영화를 찍는다 생각하고 임하게 됐지요."

그녀의 등은 부항을 뜬 자국으로 새빨갛게 얼룩져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바젤에서 '로엔그린'을 혼자 해내다가 두드러기가 나서 된통 고생한 적도 있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미친 거죠(웃음). 2000명 넘는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라 하면 공포부터 느껴질 텐데, 저는 제가 공부한 걸 보여줄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니. 자기가 좋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게 노래할 수 있지만 마음에 안 들면 세상의 절반을 준다 해도 못 하는 게 예술가의 자존심이죠."
처음부터 원톱은 아니었다. '루살카'는 두 번째, '예브게니 오네긴'도 두 번째, '가면무도회'는 세 번째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해 예술감독 눈에 들었고 순서를 뒤집어 첫 무대에 올랐다. 지난 3월엔 야나체크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의 주역으로 독일 함부르크 슈타츠 오퍼에도 섰다. 더 넓은 무대에서 다채로운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바젤을 떠난 그녀는 오는 21일 지휘자 정치용이 이끄는 콘서트에서 '루살카'와 베르디 '운명의 힘' 아리아를 부르고, 11월엔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에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 내년 4월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류 역으로 영국 무대에 데뷔한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더 높이 비상할 날을 꿈꾸는 서선영에게 서선영이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 누구보다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싶어요."
▷2016 한 여름 밤의 콘서트=21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3487-0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