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 디즈니 왜 버렸냐고? 내 마지막 커리어 위해"

입력 : 2016.07.15 00:18

['라푼젤' '겨울왕국' 캐릭터 그린 디즈니 출신 애니메이터 김상진]

한국애니 '빨간구두…' 제작 합류
"후배들과 내 경험 공유하려 귀국… '애들 영화'란 인식만 탓하지 말고 어른에게도 재밌게 만들면 되죠"

장편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애들이나 보는 만화영화'가 아니다. 올해 상반기 흥행 영화 10위권 안에 든 '주토피아'와 '쿵푸팬더3'는 각각 470만, 398만 관객을 동원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해마다 나오는 애니메이션 흥행작 중 한국에서 만든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성공한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마당을 나온 암탉'(2011) 한 편 정도다. 한국에서도 '겨울왕국'이나 '쿵푸팬더'처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을까?

캐릭터·애니메이션·게임 제작사 '로커스'가 제작 중인 장편 애니메이션 '빨간 구두와 일곱 난장이'는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포부에서 시작됐다. 조선일보·한국콘텐츠진흥원·KBS가 공동 주최한 '2010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新話(신화) 창조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은 '일곱 난장이'를 각색한 작품이다. 석 달 전 디즈니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김상진(57) 이사가 로커스에 합류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가속이 붙었다.

13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로커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진 이사는“실제 인물이나 경험을 떠올리며 캐릭터 디자인을 한다”고 했다. 뒷벽에 붙은 그림은 그가 디즈니에서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빅 히어로’다. /장련성 객원기자
13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로커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진 이사는“실제 인물이나 경험을 떠올리며 캐릭터 디자인을 한다”고 했다. 뒷벽에 붙은 그림은 그가 디즈니에서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빅 히어로’다. /장련성 객원기자
그는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터로 유명하다. '타잔' '보물섬' '치킨 리틀' 등의 수석 애니메이터로 일했으며 '라푼젤'과 '볼트' '빅히어로'의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던 '겨울왕국'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캐릭터도 그가 디자인했다. 김상진 이사는 "빨간 구두와 일곱 난장이 작업 초기부터 캐릭터 디자인에 관한 조언을 했고, 최근 1~2년간 화상 회의를 통해서 작업에 참여해 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김상진 이사는 색약(적록 색맹)이란 이유로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광고 회사에서 일러스트를 그리다가 해외의 하도급 작업을 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알게 된 캐나다 출신 애니메이터의 제안으로 캐나다 현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6년 동안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다.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다가 디즈니에 입사했다. 당시 막 생겨난 드림웍스와 드림웍스에 인력을 뺏긴 디즈니가 애니메이터들을 구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1995년부터 20년간 디즈니에서 일했다.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블루 스카이 등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인터뷰 때마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재밌고, 즐겁다"고 한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의 목표도 디즈니나 픽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김상진 이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들에게 '꿈의 직장'이란 디즈니를 그만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 나이를 감안할 때 커리어의 마지막 단계로, 내가 가진 것을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는 말일 수도 있지만 메이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의 20년 경력이면 한국의 다른 애니메이터들이 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여기 와보니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 관객들이 애니메이션을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인식해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안 된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렇지 않아요. 재밌으면 다 봅니다. 쿵푸팬더나 겨울왕국은 어른이고 아이고 다 봤잖아요. 지금까지 재밌는 걸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죠. 제가 일하는 곳이 훗날 아시아에서 재밌고, 멋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회사로 인식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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