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이해랑', 첫 무대 후 한달치 R석 '완판'

입력 : 2016.07.14 00:48

[이해랑賞 수상자 출연 연극 '햄릿' 주연 배우 유인촌·윤석화]

- '햄릿' 유인촌
핏줄 터질 듯한 광기 발산
"흰머리 '햄릿' 걱정했는데… 관객에게 기립박수 받고 나니 이해랑 선생 생각나 감개무량"

- '오필리어' 윤석화
첫사랑에 빠진 발랄한 모습부터 실성하는 모습까지… 실력 발휘
"60대 배우가 맡은 10대 소녀… '곱게 늙었다'고 봐 주셔서 다행"

"대배우 9명이 뿜어내는 기(氣)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난 12일 국립극장에서 개막한 이해랑 탄생 100주년 연극 '햄릿'을 둘러싼 관심이 뜨겁다.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13일 낮에 가장 비싼 7만원짜리 R석이 8월 7일 마지막 공연분까지 매진됐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의 연극 분야에서 '햄릿'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고의 연극상인 이해랑연극상 역대 수상자로만 구성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역시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연출가 손진책과 무대미술가 박동우가 보여준 '시적(詩的)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 기법)'이 큰 충격과 여운을 남긴 것이다.


 

지난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햄릿’의 마지막 장면. 배우 9명이 뒤로 돌아서고 무대 뒷벽이 서서히 올라가면 극장의 객석이 관객 눈앞에 펼쳐진다. ‘햄릿’은 해오름극장의 원래 객석을 쓰지 않고, 무대 위에 따로 객석을 설치해 연극을 감상하게 했다. 왼쪽부터 박정자, 전무송, 손숙, 김성녀, 유인촌, 정동환,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모두 역대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다. /신시컴퍼니
지난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햄릿’의 마지막 장면. 배우 9명이 뒤로 돌아서고 무대 뒷벽이 서서히 올라가면 극장의 객석이 관객 눈앞에 펼쳐진다. ‘햄릿’은 해오름극장의 원래 객석을 쓰지 않고, 무대 위에 따로 객석을 설치해 연극을 감상하게 했다. 왼쪽부터 박정자, 전무송, 손숙, 김성녀, 유인촌, 정동환,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모두 역대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다. /신시컴퍼니
첫 공연을 끝낸 남녀 주연 배우 유인촌(65)과 윤석화(60)의 표정은 밝았다. "워낙 뛰어난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해서 마치 여러 차례 해본 공연처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햄릿 역 유인촌은 관객 전원에게서 기립 박수가 나오던 순간 "연출가 이해랑 선생이 생각나 감개무량했다"고 말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이렇게 후배들이 지속적으로 연기를 하게 도와주시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17년 만에 햄릿 역으로 무대에 선 그는 "이제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일까 걱정도 많이 들었는데,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그냥 무대에 서는 정공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첫 장면에서 장엄하면서도 냉소적인 목소리를 내던 그는, 부왕의 혼령으로부터 시해의 진상을 듣는 장면에서 공포와 경악, 분노와 경멸이 하나씩 베일을 벗는 듯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숙부에게 독이 든 잔을 먹이는 장면에선 핏줄이 터질 듯 광기를 발산했다. "장면마다 햄릿의 심정이 어떤 걸까 생각하고 진실스럽게 다가갔더니 젊은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는 "햄릿이란 인물이 삶에 대해 지닌 고민이 워낙 깊어서, 오히려 내가 이 나이에도 따라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에너지 소모가 큰 역할을 혼자서 맡아야 하는 그는 "목이 쉴까 봐 제일 걱정인데, 잘 쉬면서 조절하는 게 연기 못지않게 큰일"이라고 했다.

오필리어 역 윤석화는 "공연 직후 무대에서 내려올 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오늘 '신문 잘 봤다'는 메시지가 쇄도하면서 첫 공연을 끝냈다는 실감이 났다"고 했다. "꼭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연출한테 제가 구박을 제일 많이 받았지만 '연극을 위해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생각해서 견뎠죠."

윤석화의 오필리어는 '60대 배우가 10대 소녀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이 잊도록 만들었다. 첫 장면에선 첫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햄릿의 광기에 상처를 받고 끝내 실성하는 장면에선 젊은 배우라면 보여줄 수 없을 연기력을 발휘했다. "오랜만에 젊은 역할을 하니 민망하기도 했는데 '곱게 나이 들었다'고 봐 주셔서 다행이에요. 오필리어처럼 순수하고 맑은 내면을 지니고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게 효과가 있었나 봐요."

두 사람 모두 오랜 연기 경력을 지녔지만 무대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인촌은 윤석화에 대해 "열정과 표현력이 대단하고, 오필리어처럼 순수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윤석화는 유인촌이 "인간적으로 넓고 젠틀한데, 실제로 햄릿의 포스를 지니고 있는 분"이라고 했다.

▷연극 '햄릿' 8월 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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