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없어 슲으기만…" 이중섭 詩등 9점 발견

입력 : 2016.07.04 03:00   |   수정 : 2016.07.04 12:47

[미공개 자작詩 6점·그림 3점]

- 세상 떠나기 전 절망감 절절히
"나를 할퀴던 괴심한 놈들… 그래서 난 공모할 수 없소"
능구렁이에 올라탄 여인 그림 등 천진난만 스타일과 크게 달라

- 가족은 일본에… 고독했던 이중섭
말년 함께 한 소설가 최태응, 자신의 일기장 속에 끼워서 보관
고은 "내면의 긴박한 색조 나타나"

"거기 패잔병(敗殘兵)들의 위엄(威嚴)을 세울려는 적군(敵軍)이 있다/ (중략)/ 자식(子息)이 없는 여름은 슲으기만 하다." 가난과 고독에 지친 서른아홉 살 이중섭이 생을 마감하기 한 해 전 가족과 헤어진 절망을 담아 연필로 써내려 간 시 '질하(疾夏·병든 여름·1955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국민 화가 이중섭이 남긴 미공개 연필 소묘(素描) 3점과 자작시 6점 등 9점이 새로 발견됐다. 이중섭의 마지막 나날을 지켜본 소설가 최태응(1916~1998)씨의 1955년 일기장 속에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최씨의 차녀 은철(68·뉴욕 거주)씨는 최근 부친의 일기를 정리하다 발견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1954~1955년쯤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가족과 생이별한 뒤 외롭게 살던 이중섭(오른쪽)이 절친한 술친구였던 당시 현역 육군 대령 이기련(가운데), 소설가 최태응(왼쪽)과 함께 상 앞에 모여 앉아 있다. 최태응씨 유족이 소장해온 이 사진은 최근 고려대에 기증됐다. /최은철씨 제공
1954~1955년쯤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가족과 생이별한 뒤 외롭게 살던 이중섭(오른쪽)이 절친한 술친구였던 당시 현역 육군 대령 이기련(가운데), 소설가 최태응(왼쪽)과 함께 상 앞에 모여 앉아 있다. 최태응씨 유족이 소장해온 이 사진은 최근 고려대에 기증됐다. /최은철씨 제공
이중섭은 1956년 나이 마흔에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절명했다. 이번에 발견된 소묘와 시는 그 직전인 1954~1955년에 그리고 쓴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중섭은 가족도 없고 돈도 없고 몸도 아팠다. 1952년 생활고를 못 이겨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95·한국명 이남덕)씨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돌려보낸 뒤 고독감에 시달리다 정신병원 신세도 졌다. 경북 왜관에 있는 구상(1919~2004) 시인 집과 대구 매천동에 있는 최태응씨 집에 몇 달씩 머물렀다.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그의 천진난만한 작품 스타일과 크게 다르다. 소묘는 몸매가 풍만한 여성이 가랑이 사이에 구렁이를 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 여성의 나신 등을 스케치했다. 시에도 '능구렁이를 탄 여인이 하늘로 올라간다' 등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를 연상시키는 퇴폐적이고 절망적인 표현이 눈에 띈다. '나를 할퀴던 괴심한 놈들/ 그들이 해를 겁내는가 보오/ 그래서 나는/ 그들과 공모(共謀)할 수 없는/ 그늘에서 쫓겨난 놈이 되었오'('무제' 중)라는 대목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널리 불린 우리 가곡 '바우고개'(1934년 이흥렬 작곡, 이서향 작사) 가사를 그대로 받아 적기도 했다. 떠난 사람을 그리는 쓸쓸한 노래다.

이번에 빛을 본 이중섭의 그림과 글은 널리 알려진 그의 천진난만한 작품 스타일과는 크게 다르다. 풍만한 몸매의 여성이 가랑이 사이에 구렁이를 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그림①), 여성의 나체 스케치(그림②), ‘능구렁이를 탄 여인의 登天(등천·하늘로 올라감)’이라는 글귀(그림③) 등에선 퇴폐·관능적 색채가 묻어난다. ‘나를 할퀴던 괴심한 놈들/그들이 해를 겁내는가 보오/그래서 나는/그들과 공모(共謀)할 수 없는/그늘에서 쫓겨난 놈이 되었오’라는 시 구절(그림④)에서는 절망감이 느껴진다. /최은철씨 제공
이번에 빛을 본 이중섭의 그림과 글은 널리 알려진 그의 천진난만한 작품 스타일과는 크게 다르다. 풍만한 몸매의 여성이 가랑이 사이에 구렁이를 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그림①), 여성의 나체 스케치(그림②), ‘능구렁이를 탄 여인의 登天(등천·하늘로 올라감)’이라는 글귀(그림③) 등에선 퇴폐·관능적 색채가 묻어난다. ‘나를 할퀴던 괴심한 놈들/그들이 해를 겁내는가 보오/그래서 나는/그들과 공모(共謀)할 수 없는/그늘에서 쫓겨난 놈이 되었오’라는 시 구절(그림④)에서는 절망감이 느껴진다. /최은철씨 제공
미술평론가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보통 사람이 읽어도 절박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며 "이중섭 마지막 시기의 자료가 많지 않고, 특히 이중섭이 그림이 아니라 글로 자신을 표현한 것은 거의 없어 가치가 높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연세대 교수는 "생애 마지막 시기, 이중섭의 내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했다. 그는 "이중섭이 누구에게 보일 의도 없이, 내밀하고 절실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글"이라며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처지, 타협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했다. 이중섭 평전을 쓴 고은 시인은 "이중섭 내면의 긴박한 색조가 나타나 있다"고 했다.

이 자료들을 발견한 은철씨에게 이중섭은 '어린(일곱 살) 나를 늘 업어주던 아저씨'였다. 그는 "늘 웃고 있던 아저씨가 실은 극도로 불우한 사람이었나 보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은철씨는 자료를 찾은 경위를 편지로 써서 도쿄에 사는 이중섭의 차남 이태성(67·일본 이름 야마모토 야스나리)씨에게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아침마다 시골길을 산보 갔다가 돌아오면 늘 저를 업어주셨던 아저씨(이중섭)의 넓고 편안했던 등이며, 우리 아버지(최태응씨)가 사다 준 그림물감을 가지고 아저씨가 동네 연못가에서 그림을 그리시던 모습 등이 제겐 모두 소중한 기억'이라고 썼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뒤, 유품인 검은 가죽 가방 속에 아저씨가 쓰던 붓과 은박지 그림, 아저씨 아들들의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아저씨는 돌아가실 때까지 사랑하는 두 아들의 사진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화가 이중섭의 차남 이태성(일본 이름 야마모토 야스나리)씨가 2일 도쿄 시부야에서 최은철씨의 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수혜 특파원
화가 이중섭의 차남 이태성(일본 이름 야마모토 야스나리)씨가 2일 도쿄 시부야에서 최은철씨의 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수혜 특파원

야스나리씨는 "은철씨가 보내준 아버지의 시를 읽고 '괴로워하셨구나. 돌아가실 때까지 이런 기분으로 쭉 지내신 걸까' 생각했다"며 "은철씨가 아버지 유품을 잘 보관해줘서 고맙고, 기증하겠다니 더욱 고맙다"고 말했다.

은철씨가 찾아낸 자료 중 현재 1점은 은철씨가, 나머지 8점은 이근배 시인이 가지고 있다. 이 시인은 과거 이중섭 전기를 쓴 적이 있어 은철씨가 이중섭 연구에 참고하도록 보여줬다. 현재 뉴욕에 사는 은철씨는 "내가 보관 중인 원본 1점과 전체 디지털 스캔본을 먼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고, 이 시인이 검토 중인 나머지 자료도 국립현대미술관에 모두 기증하겠다"고 했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724-6322, www.jungseob.com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수·토 오전 10시~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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