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범은 위조했다는데… 이우환 화백은 "진품"

입력 : 2016.06.30 03:00

그림 13점 논란… 미술계 "당혹"

'위작(僞作)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80·사진) 화백이 29일 경찰에 출석해 "전부 내가 그린 진품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작가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국과수와 민간 감정기관의 안목 감정 및 과학 감정도 위작 판단의 중요한 요소"라며 "위작이라고 확신하고 수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화백은 이날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해당 작품들을 감정하고 나온 뒤 "그림의 호흡이나 리듬, 색깔을 쓰는 방법이 전부 내 방식이었다"며 "13점의 작품에 내 작품이 아니라고 볼 만한 이상한 점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국과수는 사용한 물감과 붓터치 등이 다르다는 것을 근거로 위작이라고 감정했지만, 물감이나 붓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것을 쓰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어 "작품의 주인인 화가가 먼저 판단을 내리기 전에 수사기관과 국가기관이 위작이라고 판단을 내려 사건을 키운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경찰 수사에 불만을 표시했다. 2~3년 전부터 계속돼온 이 화백 위작 논란이 마무리될 것으로 한껏 기대했던 미술계는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경찰과 작가의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혀 앞으로 위작 논란이 되레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작 논란은 경찰이 작년 6월 "이 화백의 작품 가운데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의 위작들이 2012~2013년 서울 인사동 일부 화랑을 통해 유통됐다"는 첩보를 받고 수사에 돌입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5월 검거된 위조 총책으로 알려진 현모(66)씨의 변호인은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준비 기일에서 "(현씨가) 작품을 위조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자신의 처벌을 감수하고 있다"며 위조 사실을 시인했다.

처음 위작 논란이 불거졌을 때 "내 그림 중 위작은 없다"고 잘라 말했던 이 화백은 지난 1월 최순용 변호사를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불행히도 다른 작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우환 작품도 위조품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이 화백은 지난 27일 경찰에 처음 출석해 그림을 본 뒤 진품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보며 미술계는 "이 화백이 적어도 몇 점에 대해서는 위작 판정을 낼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 화백이 위조범이 위조했다고 자백한 작품 4점뿐 아니라 13점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미술계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판단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지만 이번 경우는 정말 모호하다"며 "이 화백이 진품 선언을 한 이상 경찰이 앞으로 조사를 더 한다고 해도 천경자 '미인도'처럼 미궁에 빠질 공산이 크다"고 했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여러 상황상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았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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