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설 때 마음가짐? 100%의 나를 쏟아내는 것"

입력 : 2016.06.30 00:55

피아니스트 샛별 부니아티슈빌리, 루체른 심포니와 첫 내한 협연
女帝 아르헤리치에 극찬 받으며 10대부터 주목… 지휘자들 러브콜

지난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제임스 개피건(37)이 지휘한 루체른 심포니 첫 내한 공연에서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29)는 달콤한 손키스를 날리며 무대로 나왔다.

그리그는 한국민에게 애수 띤 곡조 '솔베이지의 노래'('페르귄트 모음곡' 중 하나)로 기억되는 작곡가. 부니아티슈빌리가 빚어내는 그리그는 뜨거웠다. 프랑스의 한 음악 전문 기자가 '문어발 같다'고 묘사한 것처럼, 길고 유연한 손가락으로 건반을 휘어감은 채 몰아치다가 절정에 이르면 온 힘을 다해 콰광 내리쳤다. 간혹 오케스트라보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연주해 합이 슬쩍 어긋났는데 그게 묘하게 긴장감을 줬다.

사흘 뒤인 27일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난 부니아티슈빌리는 "한 번에 다 쏟아붓는다. 연주에 대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나의 목표는 판타지와 아드레날린을 100% 쏟아내는 것. 그래서 연주 직전 떨지 않고, 무대에 나가서도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는 “내 삶의 모토는 ‘나다운 모습에 충실하자’이다. 아무도 닮고 싶지 않고, 아무도 날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는 “내 삶의 모토는 ‘나다운 모습에 충실하자’이다. 아무도 닮고 싶지 않고, 아무도 날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부니아티슈빌리는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다. 10대 시절에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극찬을 받은 조지아(구 그루지야)의 샛별. 불과 얼음을 오가는 극단적 연주, 그러면서도 사색의 흔적을 다층적으로 박아 넣은 깊이가 있어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지휘 거장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았다. 여섯 살 데뷔, 열 살 무렵엔 이미 서유럽 전역과 동유럽,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다닐 만큼 재능을 타고났다. 또래 연주자들과 달리 콩쿠르를 발판 삼아 국제 무대로 도약하지 않은 점도 독특하다.

부니아티슈빌리가 나고 자란 1990년대 조지아는 혼돈의 연속이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가난과 굶주림이 나라를 뒤덮었다. 하지만 부모, 특히 엄마가 온몸으로 그녀를 막아줬다. "집에 낡고 오래된 피아노가 있었어요. 세 살 때 처음 그 앞에 앉았는데 엄마는 금방 싫증 내는 제 성격을 꿰뚫어 보고 날마다 새로운 곡, 다른 악보를 보면대 위에 올려놨어요. 저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신나게 새 곡을 파고들었어요."

모친은 딸에게 "좋아하는 것은 뭐든 열심히 해라" "오늘 하루만 사는 것처럼 살라"고 입이 닳게 말했다. 피아노도, 책도, 외국어도 손에 닿는 건 뭐든 맹렬히 익혔다. 여덟 살 때 체호프, 아홉 살 때 도스토옙스키를 완독하고 영어·독어 등 5개 국어를 익혔다. 피아노를 처음 가르쳐 준 이도 엄마였다. 이후 올레그 마이젠버그 등 거장들에게 배웠지만 정통 음악 교육에서 한발 비켜 서 있었던 것은 자유분방한 해석과 연주에 자양분이 되어줬다.

2010년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독주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 2011년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아 리스트 작품으로만 구성한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이후 쇼팽 앨범과 '마더랜드', 올해 초 '칼레이도스코프'까지 총 네 장을 녹음했다. 음(音)마다 어떤 색깔을 입힐 건지 직접 구상했다.

"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거예요. 마지막 순간에는 자기 자신과 자기가 연주하는 악기만 남으니까요." 부니아티슈빌리는 "가끔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내 연주에 대해 내뱉는 비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때다. 궁극적으로 예술은 주관적이다. 새로운 걸 만들어낼 때 '진짜'가 나오고 사람들은 그걸 알아봐준다"고 했다.

부니아티슈빌리는 지난 24일 앙코르로 쇼팽 전주곡 4번을 연주한 때를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회상했다. 마지막 음을 끝으로 침묵으로 빠져드는 그녀를 따라 청중들도 완벽한 고요를 만들어냈다. "저는 소리가 침묵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제 연주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환상적인 일체감이었어요."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