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6.23 10:13
22일 오후 3시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스튜디오 다락은 용광로였다.
머리가 희끗한 아홉명의 배우가 내뿜는 열기는 식을줄 몰랐다. 환갑인 배우는 여전히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오빠·언니 배우'들을 무장해제시켰다.
'평균 나이 66세'. 연극계 거목들이 모인 연극 햄릿 연습장. 얼굴만 봐도 알만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있다.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모두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선후배사이다.
7월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다. 전직 장관도 이곳에선 그저 배우였다. 서열도 엄겼했다. 전무송(75)과 함께 최고령 출연자이자 소화기 수술 후 회복이 예상보다 원활하지 못해 하차한 배우 권성덕의 자리를 대신한 한명구(56)는 연습에 합류한 지 닷새 째인데 한켠에 조용히 자리잡았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레드'에서 마크 로스코를 연기하는 대선배지만 이곳에서는 막내다. 그 덕분에 본래 68.2세던 평균 연령이 2세 가량 낮아졌다.
오른쪽 구석에는 셰익스피어의 삼촌이자 그의 어머니 거트루드와 결혼한 '클로디어스', 그리고 햄릿 선왕을 동시에 연기하는 정동환이 도인처럼 가부좌를 켜고 앉아 있다.
연습 현장이 엄격한 것만은 아니다. 한명구가 합류하기 전까지 60세 막내였던 오필리어 역의 윤석화가 깡총깡총 뛰어들어오며 살가운 목소리를 내자 배우, 스태프 가릴 것 없이 웃음보가 터진다.
오필리어 오빠인 레어티즈 역의 전무송이 "어여쁜 내 동생, 얼굴이 붉어졌네"라고 거들자, 장내 웃음소리는 더욱 커진다. 윤석화는 주변을 둘러 보더니 "제 나이에 걸맞지 않아서 그래요? 아니면 너무 잘 어울려서 그래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음이 청춘이어야지, 진짜 젊다고 하지 않았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윤석화는 덧 없이 오필리어였다.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윤석화 씨가 애교를 담당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동선을 이동하는 내내 틈틈이 김성녀의 옷 매무새 등을 만져줬다.
어느 현장보다 뜨겁고 실전 같았던 '햄릿'의 연습현장 공개 40분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봤다. 1막 초반 약 30분 간 내용이다.
#15:09
실제 무대는 1500석 짜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객석을 비우고 이 극장 무대 위에 세운 600석짜리 가설 객석에 삼면이 둘러쌓인다. 검은 망토를 입은 아홉 배우들은 맨 바닥에 대열을 갖추고 함께 서 있기만 해도 실전 분위기를 풍겼다. 병사 역을 맡은 굵직한 저음의 박정자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연극은 언제나 옳다. 마치 동굴 속으로 들어온 듯, 집중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도 연기한다.
#15:20
역시 남자 캐릭터인 호레이쇼를 맡은 김성녀가 호방하게 입장한다. 유인촌이 연기하는 햄릿의 절친한 친구 역이다. 창으로 다져진 단단한 목소리와 여자 외모가 어우러지며 언뜻 미소년의 분위기를 풍긴다.
#15:23
연습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그 장면. 레어티즈 역의 전무송은 발랄한 윤석화의 연기에 연신 '오빠 웃음'이다. 웃으니 젊은 배우 못지 않다. 윤석화는 아무렇지 않게 앙칼진 표정을 능청스럽게 소화한다.
#15:28
바람 소리가 들리고 배경은 망루다. 햄릿이 이미 고인이 된 햄릿 선왕의 모습을 봤다는 호레이쇼와 함께 그곳에 오른다. 햄릿 선왕 역의 정동환이 등장하고 두 사람은 단단한 발성으로 몽환적인 순간을 연출해낸다.
#15:35
햄릿의 독백 장면. 머리가 희끗한 유인촌의 햄릿은 어떤 햄릿보다 젊다. 손진책 연출(극단 미추 대표)은 "연기가 아니라, 그냥 배역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길 바랐기 때문에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번으로 6번째 햄릿을 연기하는 유인촌은 여전히 정정하고 꼿꼿했다. 햄릿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본인 역 외에 앙상블도 함께 맡는 아홉 배우들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 연기를 거든다.
연습은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됐다. 공연을 약 20일 앞뒀는데 손 연출은 "모든 배우들이 대사를 다 외웠다"고 했다. 한명구도 선배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다며 대사를 부리나케 외웠다.
손숙은 주변에 "(유인촌) 장관님이 더 멋있어지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평소 정부의 전현직 호칭으로 부르는지 묻자 유인촌은 "평소는 안 그러신다. 농을 하신 거"라고 웃는다. 유인촌은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숙은 전 환경부 장관, 김성녀는 현직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다.
연습 현장은 여느 젊은 배우들 못지 않게 뜨겁고 바지런하다. 오후 2시가 시작인데 정동환은 오전 10시에 오는 등 누가 먼저 오는지 대결한다며 손 연출이 흡족해했다. 손숙은 "연습 분위기가 최고다. 이 배우들이 다시 모일 수 있을 지 눈물이 날 정도다. 요즘 연습실에 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이룰 건 다 이룬 배우들이데 연출 말을 잘 듣냐는 물음에 손 연출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게 맞게 해오신 것이 있어 처음에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서로 이렇게 배려를 잘 하실 수 없다. 편안하게 잘 맞춰주셔서 분위기가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한명구는 20대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선배님들이랑 같이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인데, 유쾌하다.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전무송, 박정자등 선배들도 너나할 것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희끗한 아홉명의 배우가 내뿜는 열기는 식을줄 몰랐다. 환갑인 배우는 여전히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오빠·언니 배우'들을 무장해제시켰다.
'평균 나이 66세'. 연극계 거목들이 모인 연극 햄릿 연습장. 얼굴만 봐도 알만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있다.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모두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선후배사이다.
7월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다. 전직 장관도 이곳에선 그저 배우였다. 서열도 엄겼했다. 전무송(75)과 함께 최고령 출연자이자 소화기 수술 후 회복이 예상보다 원활하지 못해 하차한 배우 권성덕의 자리를 대신한 한명구(56)는 연습에 합류한 지 닷새 째인데 한켠에 조용히 자리잡았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레드'에서 마크 로스코를 연기하는 대선배지만 이곳에서는 막내다. 그 덕분에 본래 68.2세던 평균 연령이 2세 가량 낮아졌다.
오른쪽 구석에는 셰익스피어의 삼촌이자 그의 어머니 거트루드와 결혼한 '클로디어스', 그리고 햄릿 선왕을 동시에 연기하는 정동환이 도인처럼 가부좌를 켜고 앉아 있다.
연습 현장이 엄격한 것만은 아니다. 한명구가 합류하기 전까지 60세 막내였던 오필리어 역의 윤석화가 깡총깡총 뛰어들어오며 살가운 목소리를 내자 배우, 스태프 가릴 것 없이 웃음보가 터진다.
오필리어 오빠인 레어티즈 역의 전무송이 "어여쁜 내 동생, 얼굴이 붉어졌네"라고 거들자, 장내 웃음소리는 더욱 커진다. 윤석화는 주변을 둘러 보더니 "제 나이에 걸맞지 않아서 그래요? 아니면 너무 잘 어울려서 그래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음이 청춘이어야지, 진짜 젊다고 하지 않았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윤석화는 덧 없이 오필리어였다.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윤석화 씨가 애교를 담당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동선을 이동하는 내내 틈틈이 김성녀의 옷 매무새 등을 만져줬다.
어느 현장보다 뜨겁고 실전 같았던 '햄릿'의 연습현장 공개 40분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봤다. 1막 초반 약 30분 간 내용이다.
#15:09
실제 무대는 1500석 짜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객석을 비우고 이 극장 무대 위에 세운 600석짜리 가설 객석에 삼면이 둘러쌓인다. 검은 망토를 입은 아홉 배우들은 맨 바닥에 대열을 갖추고 함께 서 있기만 해도 실전 분위기를 풍겼다. 병사 역을 맡은 굵직한 저음의 박정자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연극은 언제나 옳다. 마치 동굴 속으로 들어온 듯, 집중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도 연기한다.
#15:20
역시 남자 캐릭터인 호레이쇼를 맡은 김성녀가 호방하게 입장한다. 유인촌이 연기하는 햄릿의 절친한 친구 역이다. 창으로 다져진 단단한 목소리와 여자 외모가 어우러지며 언뜻 미소년의 분위기를 풍긴다.
#15:23
연습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그 장면. 레어티즈 역의 전무송은 발랄한 윤석화의 연기에 연신 '오빠 웃음'이다. 웃으니 젊은 배우 못지 않다. 윤석화는 아무렇지 않게 앙칼진 표정을 능청스럽게 소화한다.
#15:28
바람 소리가 들리고 배경은 망루다. 햄릿이 이미 고인이 된 햄릿 선왕의 모습을 봤다는 호레이쇼와 함께 그곳에 오른다. 햄릿 선왕 역의 정동환이 등장하고 두 사람은 단단한 발성으로 몽환적인 순간을 연출해낸다.
#15:35
햄릿의 독백 장면. 머리가 희끗한 유인촌의 햄릿은 어떤 햄릿보다 젊다. 손진책 연출(극단 미추 대표)은 "연기가 아니라, 그냥 배역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길 바랐기 때문에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번으로 6번째 햄릿을 연기하는 유인촌은 여전히 정정하고 꼿꼿했다. 햄릿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본인 역 외에 앙상블도 함께 맡는 아홉 배우들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 연기를 거든다.
연습은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됐다. 공연을 약 20일 앞뒀는데 손 연출은 "모든 배우들이 대사를 다 외웠다"고 했다. 한명구도 선배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다며 대사를 부리나케 외웠다.
손숙은 주변에 "(유인촌) 장관님이 더 멋있어지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평소 정부의 전현직 호칭으로 부르는지 묻자 유인촌은 "평소는 안 그러신다. 농을 하신 거"라고 웃는다. 유인촌은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숙은 전 환경부 장관, 김성녀는 현직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다.
연습 현장은 여느 젊은 배우들 못지 않게 뜨겁고 바지런하다. 오후 2시가 시작인데 정동환은 오전 10시에 오는 등 누가 먼저 오는지 대결한다며 손 연출이 흡족해했다. 손숙은 "연습 분위기가 최고다. 이 배우들이 다시 모일 수 있을 지 눈물이 날 정도다. 요즘 연습실에 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이룰 건 다 이룬 배우들이데 연출 말을 잘 듣냐는 물음에 손 연출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게 맞게 해오신 것이 있어 처음에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서로 이렇게 배려를 잘 하실 수 없다. 편안하게 잘 맞춰주셔서 분위기가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한명구는 20대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선배님들이랑 같이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인데, 유쾌하다.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전무송, 박정자등 선배들도 너나할 것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