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합쳐 400년… 연기의 달인들 내뿜는 氣로 후끈했다

입력 : 2016.06.23 00:59

[이해랑 탄생 100주년 연극 '햄릿' 연습 현장 가보니]

햄릿 유인촌, 순식간에 광기 가득… 오필리어 윤석화는 새침·발랄
"모두 젊은 배우 못지않게 열성적" 7월 12일 국립극장서 개막

"아, 저주받을 악당은 저기 선량한 얼굴로 미소짓는다. 뒤틀린 세상, 나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태어났구나!"

햄릿 역의 유인촌(65)이 마침 구석에 앉아 있는 기자를 가리키며 절규하는 바람에 흠칫 놀랐다. 장중함 속에 위엄을 갖추고 있던 햄릿의 얼굴이 순식간에 광기에 휩싸였다. 분노와 경멸, 슬픔과 결의의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져 선 굵은 발성과 함께 에너지를 뿜어냈다. 박수가 터졌다. 누군가 "(문체부) 장관 하실 때보다 지금이 더 멋있지 않아요?"라고 했다.

22일 오후 연극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손진책 연출) 연습이 진행된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3층은 연기의 달인들이 뿜어내는 기(氣)가 꽉 들어찬 듯했다. 한 명 한 명이 각자 역할에서 대단한 내공을 보였다. 오필리어 역의 윤석화(60)는 몸을 흔들며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새침하게 "그만 해요, 오라버니"라 쏘아붙이며 발랄한 젊은 여성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폴로니어스 역 박정자(74)의 연기에선 노회하고 완고한 인물의 깊은 감정이 드러났다.

22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연습실에서 연극 ‘햄릿’ 출연 배우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맨 앞 유인촌(햄릿), 뒷줄 왼쪽부터 손숙(거트루드 왕비), 손봉숙(로렌크란츠), 한명구(무덤지기), 정동환(클로디어스 왕), 박정자(폴로니어스), 김성녀(호레이쇼), 윤석화(오필리어), 전무송(레어티즈). /고운호 객원기자
22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연습실에서 연극 ‘햄릿’ 출연 배우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맨 앞 유인촌(햄릿), 뒷줄 왼쪽부터 손숙(거트루드 왕비), 손봉숙(로렌크란츠), 한명구(무덤지기), 정동환(클로디어스 왕), 박정자(폴로니어스), 김성녀(호레이쇼), 윤석화(오필리어), 전무송(레어티즈). /고운호 객원기자

햄릿의 숙부와 부왕(父王)의 혼령 역을 함께 맡은 정동환(67)은 거짓 슬픔과 절망의 감정을 순식간에 교차시켰고, 거트루드 왕비 역 손숙(72)의 연기에선 자애로움과 위선이 동시에 느껴졌다. 레어티즈 역 전무송(75)은 50년쯤 젊은 역할의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았고, 호레이쇼 역 김성녀(66)는 두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청년으로 변신했다.

올 여름 공연계의 '꿈의 무대'로 알려진 이 연극은 한국 연극사의 대표적 연출가 이해랑(1916~1989) 선생 탄생 100주년과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신시컴퍼니가 제작하는 대형 연극이다. 출연 배우 9명이 모두 국내 최고의 연극상인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다. 박정자(6회), 손숙(7회), 윤석화(8회), 유인촌(10회), 전무송(15회), 손봉숙(18회), 정동환(19회), 김성녀(20회), 한명구(21회)…. 평균 나이 66.1세, 연기 경력을 모두 합치면 400년이 넘는다. 여기에 연출 손진책(13회)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16회)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프로듀서 박명성(24회) 신시컴퍼니 예술감독까지 합하면 총 12명이다. 각색은 8회 차범석희곡상 수상자인 배삼식 동덕여대 교수가 맡았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배역이 등장하지 않을 때는 검은 망토를 입고 자연스럽게 코러스(주인공 뒤에서 춤이나 노래를 맡는 배우)로 변신했는데, 다들 "코러스를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연출가 손진책(69)은 "어느 젊은 극단 배우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며 "아직 개막이 20일 남았는데 이미 대사를 다 외웠다"고 했다. 연습은 오후 2시부터이지만, 오전 10~11시쯤이면 대부분 나와서 작품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배우 손숙은 "우리가 이렇게 다시 모여서 연극을 할 기회가 없으리라는 생각에선지 연습 분위기가 정말 좋다"고 했다. 그가 "그런데 연출가가 너무 배우들을 쫀다. 의견도 안 받아주고…"라고 투덜대자 웃음이 터졌다. 박정자는 "출연료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무대에 선다. 벌써 (지인들에게 줄) 표 사느라고 다 썼을 것"이라고 했다.

햄릿 역을 여섯 번째 맡는 유인촌은 "나이 같은 것은 초월한 연극이기 때문에 염색하지 않고 흰머리 그대로 무대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젊은 연기를 하는데 관객이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초 출연하기로 했던 권성덕(12회 수상자)이 건강 문제 때문에 하차하면서 투입된 '최연소' 배우 한명구(56)는 "대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서니 20대 시절 연극판에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연극 '햄릿', 7월 12일~8월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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