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년 前도 지금도 사람 몸집은 비슷, 건물 꼭 커야 하나"

입력 : 2016.06.16 00:34

['디자인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타디자이너 英 토머스 헤더윅]

런던올림픽 성화대·2층버스 등 英 상징하는 공공디자인 도맡아
오늘 D뮤지엄에서 전시 개막
"亞 도시들, 유난히 크기에 집착… 아담함에서 즐거움 찾는게 중요"

"어머니가 20년 동안 런던 포토벨로 로드 마켓에서 허물어진 건물에 들어가 앤티크 가게를 하셨어요. 중고 구슬 장식, 아프리카 원시 부족 장신구…. 어린 제 눈엔 잡동사니일 뿐이었어요. '제대로 된 가게'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폴 스미스가 와선 '환상적인 가게'라고 말한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내 목소리보단 반대 의견이 주는 혜안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15일 곱슬머리,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46)이 빙그르르 돌아가는 팽이 모양 의자에 앉아 말했다. 그는 창조 산업의 모범 국가로 불리는 영국에서도 '아이디어 엔진' '디자인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수퍼스타다. 런던의 명물인 빨간 2층 버스의 새 디자인, 2012년 런던 올림픽 성화대와 2018년 템스 강에 들어설 예정인 보행자 전용 다리 '가든 브리지' 등 영국의 주요 공공 프로젝트를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이 천재 디자이너가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16일 서울 한남동 D뮤지엄에서 개막하는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성처럼 자동으로 회전하다가 사람이 앉으면 멈춰요. 서울에서 오랜 꿈이 실현됐네요.”토마스 헤더윅이 스스로 회전하는 의자‘스펀 훌라’에 몸을 맡기고 말했다. 서울 D뮤지엄 전시를 위해 대표작인 팽이 모양‘스펀 체어’에 센서를 달아 자동 회전할 수 있게 만든 의자다. /장련성 객원기자
“행성처럼 자동으로 회전하다가 사람이 앉으면 멈춰요. 서울에서 오랜 꿈이 실현됐네요.”토마스 헤더윅이 스스로 회전하는 의자‘스펀 훌라’에 몸을 맡기고 말했다. 서울 D뮤지엄 전시를 위해 대표작인 팽이 모양‘스펀 체어’에 센서를 달아 자동 회전할 수 있게 만든 의자다. /장련성 객원기자
"상하이, 베이징은 평평한데 서울은 산이 많네요. 빌딩 숲에서 눈 돌리면 난데없이 정글 같은 산이 나와요.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다채로움, 디자이너에겐 매력적이죠." 갑자기 발을 올려 이틀 전 인사동 가게에서 샀다는 까만 바지를 보여준다. 바짓단에 붙은 손톱만 한 꽃 장식을 가리킨다. "IT 디자인 강국 명성은 익히 알았지만 이 손기술을 보세요.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 가서도 느꼈지만 한국은 장인정신이 숨 쉬는 곳 같아요."

헤더윅은 역발상을 따뜻한 수공예 감성으로 버무려내는 마술사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은 그 진수를 보여준다. 빨대만큼 가는 플라스틱 투명 막대(길이 7.5m) 6만6000개를 외벽에 꽂아 밤송이처럼 생긴 구조물을 만들었다. 촉수 같은 막대엔 씨앗 25만개가 들어갔다.

25만개 씨앗을 투명 막대에 꽂아 만든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모습. /이완 반
25만개 씨앗을 투명 막대에 꽂아 만든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모습. /이완 반
"250개 국가관이 다들 봐달라고 아우성이에요. 사람들은 지쳐서 다 둘러보지도 못하는데. 딱 두 개 단어만 머리에 넣었죠. '조용하면서 강하게(quiet and strong)'". 셜록 홈스, 근위병, 빅벤 같은 소재는 아예 담지 않기로 했단다. 이탈리아관에서 스파게티를 만나는 것만큼 진부하니까. '더 나은 삶'이라는 주제와 영국 전통의 교집합으로 주목한 게 영국식 정원이었다. '씨앗'이란 아이디어가 거기에서 왔다. 대성공이었다.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이란 애칭까지 붙으며 최고 인기 국가관이 됐다.

최근 덴마크의 젊은 건축가 그룹 BIG과 미국 구글 본사 사옥 설계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보안상 비밀"이라면서도 힌트를 줬다. "2만명 직원이 일해요. 직원이 그렇게 많으면 내가 특별한 존재란 느낌을 갖기 힘들어요. 각자의 공간을 잘게 쪼개고 장인정신 깃든 디자인을 더해 특별하게 대우받고 있단 느낌을 주는 게 핵심이에요."

요즘 그의 이름을 흥행 보증수표로 믿고 찾아오는 아시아 고객이 많다. 그는 "아시아에선 '글로벌 스타일'을 복사하려 들고 '크기'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당신과 나, 우리 몸집은 천년만년 전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왜 큰 건물에 집착하나요. 개발자들은 폭 6~7m 되는 건물 대여섯 개를 붙여서 폭 50m 넘는 건물을 만들려고 해요."

아담한 '휴먼 스케일(human scale)'에서의 시각적 즐거움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 부딪치며 사는 정겨운 풍경을 잊지 말라 했다. "제 역할은 인류애라는 사라져가는 무대 장막을 우리 삶에 드리우는 겁니다. 직원들에게도 책상에 앉아 있지 말고 거리를 걸으며 사람을 만나라 해요. 거기에 해답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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