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 연출 "가까스로 살아가는 우리, 어떤 관계를 맺으려하는지 다뤘죠"

입력 : 2016.06.10 09:33
"이 작품이 위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위기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가를 다루려고 했다.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

3년전 미국의 한 서점에서 접한 이 희곡은 연출가 박지혜(31)를 사로잡았다. 미국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가까스로 우리'(The Skin of Our Teeth)'였다.

와일더의 대표작인 '우리 읍내'만 읽어봤던 그녀는 "희극적이면서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흥미로운" 이 희곡을 무대로 옮겼다.

'가까스로 우리'(The Skin of Our Teeth)'는 와일더에게 세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자욱한 1942년 발표됐다. 결혼한 지 5000년이 된 앤트러버스 부부와 가정부 사비나의 이야기다. 하루도 무사한 날 없이 '가까스로' 살아가는 가족이다. 빙하기, 대홍수, 전쟁과 같은 위기일발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박지혜가 연출한 '가까스로 우리'는 국립극단의 '2016 젊은연출가전' 시리즈의 열두 번째 작품으로 선정돼 10일부터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다.

극 중 캐릭터 이름은 바꾸지 않았지만 공연장과 인근 상소인 서울역 등 한국적인 공간성으로 바꾸면서 공감대를 살렸다. 배우 자신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거의 공연되지 않았던 작품인데 박 연출은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했다. 부부 이름인 앤트러버스(Anthropos)는 그리스어로 인류라는 뜻이다.

9일 오후 공연을 앞두고 만난 박 연출은 "일반적인 가정도 다른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위기가 있다"며 "앤트러버스 부부가 살 희망을 느끼지 않은 순간은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다. 지금 가족관계와 비슷하다. 아주 오래된 빙하 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상념이 많았다. 박 연출은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고, 한없이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순간도 있다"며 "SNS에서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살아 있는 자체가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너무 무섭고 무의미한 일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감정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연출은 연극계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로 꼽히고 있다. 공동창작집단 '양손 프로젝트'에 속한 박 연출은 그간 '죽음과 소녀' '폭스파인더',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 한 '판소리단편선1 - 추물/살인' '판소리단편선2 -이방인의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양손프로젝트 멤버인 배우 손상규·양조아·양종욱, 무대미술가 여신동, 뮤지션 정재일 등 그간 함께 한 창작진이 이번에 함께 했다. 배우, 스태프와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며 작품을 만들어가는데 이번에 국립극단 시즌 단원인 황순미와 안병찬, 그리고 이번에 이 작품으로 데뷔하는 김예은 등 새로운 얼굴들과도 합을 맞췄다.

박 연출은 "처음부터 배우와 연출의 경계 없이 난상토론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낯선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것이 두렵고 도전이었는데 시너지가 발휘돼 만족스럽다"고 흡족해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젊은 연출자인데 연극을 하는 것을 보면 능청맞다"고 평했다. 김 감독은 "박 연출은 거대한 작품을 방 하나 안에 꾸려놓고 관습과 먼 연출을 선보인다"면서 "미니멀리즘 또는 어쩌면 연극의 놀이적 개념을 선사한다"고 소개했다. 26일까지. 러닝타임 120분 (휴식 없음). 3만원.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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