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김소월은 닮았다, 애절한 그리움이…

입력 : 2016.06.06 02:29

[이중섭, 백년의 신화] [내가 본 이중섭] [1] 유홍준

소월의 詩는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중섭의 그림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 절절함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황혼에 울부짖는 '황소'이다

유홍준 미술사가·명지대 석좌교수
'백년의 신화'가 오늘에 환생하는 것만 같았다. 이중섭이 한국 현대미술의 전설로 된 지야 오래됐지만 정작 국민이 그의 실작품을 보고 예술적 감동을 받을 기회는 아주 적었다. 미술과 함께 살아온 나 자신도 1986년에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이중섭 30주기전 이후 30년 만이다.

사람들은 "이중섭, 이중섭" 하면서 그의 예술에 담긴 이런저런 얘기들을 전설처럼 말하고 있지만 나는 이중섭 하면 먼저 세 가지 사실이 떠오른다. 첫째는 그의 유작 중에는 정통 타블로(회화) 작업으로 인식되는 캔버스에 그린 유화(油畵)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도 처음 공개된 '향도'(1939년 일본 유학 시절 작품)를 빼고는 모두 종이에 그린 것이다. 캔버스 대작(大作)도 못 해본 열악한 조건의 화가였다.

둘째로 이중섭은 100년 전에 태어나 60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화가로서 활동한 10여 년의 세월은 일제 말 군국주의의 광폭적인 압박, 해방 후 북에서 겪은 작가적 고립, 한국전쟁 중의 피란 생활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셋째는 나이 마흔밖에 안 되는 생애 마지막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다섯 차례나 드나들었고 끝내는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죽음을 맞이했다. 화가인 그가 유석진 박사의 미술 치료를 받으면서 희미한 전기스탠드를 서툰 필치로 그린 그림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불볕더위보다 더 뜨거운 ‘이중섭 열기’ - 이중섭 열기가 주말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를 보기 위해 5일 오후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만 4205명이 찾았다. 현충일인 6일도 개관한다. /이태경 기자
불볕더위보다 더 뜨거운 ‘이중섭 열기’ - 이중섭 열기가 주말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를 보기 위해 5일 오후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만 4205명이 찾았다. 현충일인 6일도 개관한다. /이태경 기자
그런 지지리 복 없는 세월이었지만 이중섭은 자신이 겪은 개인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캔버스가 없으면 골판지에, 담뱃갑 은박지에, 바다 건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여백에 자신의 마음을 그렸다. 그 예술적 편린 200여 점이 이번에 성대하게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다시 보아도 이중섭 예술의 본질은 '그리움'이다. 김소월의 시(詩)에 비견할 만한 것인데 소월과 중섭의 그리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소월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면 중섭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기 때문에 더욱 애절하다. 그런 중섭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역시 황혼에 울부짖는 '황소'이다.

이중섭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은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살던 원산 신혼 시절과 서귀포 피란 시절이었다. 그리고 서른여덟에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모처럼 창조적 예술혼을 불태웠는데 그때 이중섭의 예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에 처음 공개된 젊고 힘이 넘치는 검은 눈망울의 '황소'이다. 이 두 작품은 이중섭의 자화상이다.

‘황소’(1953~1954년) 두 점. 배경에 쓰인 붉은색이 조금 어두운 오른쪽 작품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황소’(1953~1954년) 두 점. 배경에 쓰인 붉은색이 조금 어두운 오른쪽 작품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그의 은지화(銀紙畵)에는 역시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거의 병적인 자학이 절절하다. 팔다리가 묶인 군상들, 게 한 마리를 끌고 다니는 귀여운 아이,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짙은 포옹, 입술을 꽉 깨문 키스 같은 그림은 아주 작은 철필 스케치이지만 가히 명작이라는 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시장에서 여러 미술관 관장을 만나 중섭의 예술에 대한 감상을 교감하였는데 대화 끝에는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 전시 디스플레이가 언제 이렇게 발전했느냐는 찬사였다. 정말 환상적이다. 백 년 전에 세워진 석조건물에 백 년 뒤 후손들이 이중섭이라는 '백년의 전설'을 이렇게 장식하고 있는 것을 천상의 중섭은 지금 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묻고 싶어만 진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6년 10월 3일까지]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522-3342, www.jungseo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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