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안무가 허용순 "한국 무용수들 기량 훌륭"

입력 : 2016.05.16 09:54
무용계 국제무대 진출 1세대
대한민국발레축제 초대 공연

재독 안무가 허용순(52)은 무용계 국제 무대 진출 1세대다. 해외에서 작품 의뢰를 받는 몇 안되는 한국의 안무가다. 유니버설발레단 등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름마다 내한한다.

올해는 판이 커졌다. 대한민국발레축제조직위원회와 예술의전당이 펼치는 '제6회 대한민국발레축제'(29일까지 예술의전당 일대)에 초대받았다.

24~2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해외안무가 초청공연'에 자신의 두 개 작품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한다. 3년만에 한국에서 펼치는 공연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비르기트 케일의 의뢰로 지난해 11월 슈투트가르트극장에서 초연한 '디 에지 오브 더 서클(The Edge of the Circle)'과 미국 툴사발레단이 2014년 5월 초연한 '콘트라스트(Contrast)'다.

공연을 앞두고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안무가 허용순은 "80년대 외국에 나가서 지금도 살고 있지만 고국에서 안무가로 초청을 해주면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고 즐거워했다. 선화예고 재학 중이던 1980년 모나코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스위스 취리히발레단과 바젤발레단을 거쳐 뒤셀도르프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 겸 발레마스터로 활동했다. 현재 뒤셀도르프 발레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무용수들과 몸을 부딪히는 발레 마스터 일을 좋아하다 자연스럽게 안무가가 됐다. "무용수들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그런데 내가 만든 안무에 관객이 호응하는 걸 보니 또 다른 기쁨이 있더라."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답게 작품도 인간 관계를 주로 다룬다. '콘트라스트'는 해외 공연을 자주 다니는 그녀가 오래 머무는 공항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영감을 얻었다. '디 에지 오브 더 서클'은 작품을 의뢰한 카일의 평소 이미지와 인간관계에서 모티브를 삼았다.

스토리텔링이 되면서 발레의 아름다움과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을 섞은 작품을 만든다. "나는 소재를 멀리서 찾지 않는다. 공항에 있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 옷을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들. '콘트라스트'는 그 사람들이 집에 도착하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상상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디 에지 오브 더 서클'은 원 안에 연결된 인간들의 모습에서 떠올렸다. 나는 원이 수억개의 각들이 연결이 돼서 동그랗게 보이는 것 같다. 그 각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연결했다. '콘트라스트'에 비해서는 추상적이다."

한국에 오기 직전 오스트리아에서 첫 선을 보인 인스부르크 무용단의 '스위치 컴플렉스'의 테마 역시 인간이다. 허용순이 평소 좋아한 미국 영화배우 겸 가수 메릴린 먼로(1926~1962)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뤘다.

허용순의 무용 작업은 인간 관계에 대한 공부이기도 하다. 그녀가 선하다는 입소문이 난 이유이기도 하다. "무용수들은 몸을 통해 협업을 하다 보니 서로 믿지 못하면 안 된다. 단순히 함께 작업한다는 걸 초월해서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녀의 작업에 스타무용수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성신여대 교수), 이원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과 함께 엠넷 '댄싱9'의 우승자 윤전일, 이선태, 임샛별과 한류리, 조현상, 김다애 발레·현대무용계 스타들이 힘을 싣는다.

발레와 현대무용의 조합은 허용순의 장기다. "두 장르가 잘 혼합될 때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는 판단이다. "현대무용의 자유로운 몸짓을 좋아하는 동시에 클래식 발레의 라인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에 모인 무용수들은 둘 다 소화할 수 있다. 신체의 무게 중심을 위에 둔 발레의 김주원과 황혜민이 바닥을 구르며 힘들어하면서도 재미 있어하고 좋아하더라. 호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은 훌륭하다. 이번에 함께 연습하면서 새삼 느끼고 있다."

허용순은 36년전 모나코왕립발레학교에서 만난 소녀들의 꿈을 회상했다.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었다"는 소녀들은 “우리가 최고의 발레리나가 돼서 한국 발레를 이끌자”고 다짐했었고, 그 꿈은 이뤄졌다. 당시 그 소녀들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현재 한국 발레계를 주름 잡는 인물이 됐다.

친구들과 달리 2001년부터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는 허용순은 "나, 김인숙, 강수진, 문훈숙에게는 '워커 홀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80년대 당시 한국은 발레에 대해서 잘 모르던 때다. 모나코 역이 낯선 국가였다. 우리들은 새벽까지 스튜디오에 남아 연습했다. 한국에서 잘한다고 유학 왔는데 서양 친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데 정말 행복해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 같이 열심히 해서, 한국 발레에 도움이 되자고 결심했지. 동기, 후배들이 한국 최고의 발레단에서 중요한 역을 하고 있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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