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질려 사라진 열정… '풍경'과 마주하며 되찾다

입력 : 2016.04.19 00:01

- 광고 찍던 '상업 사진가'에서 '도시 찍는 작가'로 돌아온 김우영
스타작가로 활동 중 돌연 미국행
"'상업' 꼬리표 지우는 데만 3년… 美 횡단하며 닥치는 대로 찍었죠"

얼마 전 인터넷에선 20년 전 광고 사진이 화제였다. 지금은 톱스타가 된 송승헌, 소지섭과 이젠 '사랑이 엄마'로 더 알려진 일본 패션모델 야노 시호의 풋풋한 시절이 담긴 의류 브랜드 '스톰' 광고 사진이다. 9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사진은 특별하다. 톱스타의 데뷔 시절이라는 점도 있지만 장난치듯 자유로운 분위기로 연출된 사진에 당시 X 세대들은 열광했다.

"그전까지 우리 광고 사진은 딱딱하게 포즈 잡은 채로 '하나, 둘, 셋!' 하고 찍었죠. 안 그래도 신인인데 어색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때 '스냅 샷'을 도입했어요. 일본으로 그 친구들을 데려가서 무조건 뛰라고 했지요. 하하!"

한때 신물 나게 인물 사진을 찍었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영 어색하다는 김우영. /이진한 기자
한때 신물 나게 인물 사진을 찍었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영 어색하다는 김우영. /이진한 기자
호방하게 웃는 이 남자, 20년 전 그 광고 사진을 찍은 사진가 김우영(56)이다. 국내 광고계에선 전설적인 인물로 90년대 중반 이영애가 모델로 나온 화장품 '헤라' 광고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오로지 그의 사진만 믿고 투자한 출판사와 패션 전문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상업 사진가'로 90년대를 풍미했던 그가 '순수 사진가'로 돌아왔다. 2007년부터 꼬박 9년 동안 미국에서 작업한 작품을 들고서. 오는 28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여숙 갤러리에서 개인전 'Along The Boulevard'를 열고, 가을엔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개인전을 연다. 다음 주 시작하는 전시에선 그가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막 '데스 밸리(Death Valley)'와 디트로이트 등에서 찍은 도시 풍경 사진을 선보인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인물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김우영이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 밸리 사막에 있는 건물을 찍은 사진 작품‘스테이트 라인 로드’(2015년 작). 입체적 건물을 정면에서 찍어 2차원의 회화 같은 느낌이 든다. /김우영 제공
김우영이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 밸리 사막에 있는 건물을 찍은 사진 작품‘스테이트 라인 로드’(2015년 작). 입체적 건물을 정면에서 찍어 2차원의 회화 같은 느낌이 든다. /김우영 제공
"한창때 아침에 일어나면 찍어야 할 연예인이 스무 명쯤 대기했어요. 얼굴, 질렸습니다(웃음). 어느 순간 내가 뭐하나 싶더군요. 돈은 쌓여 갔지만 열정은 방전돼 갔지요." 살기 위해 도망치듯 떠났다. 대학(홍익대 도시계획과)을 졸업하고 유학(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 가 사진가의 꿈을 지폈던 미국으로 향했다.

"'상업'이란 꼬리표를 지우는 데만 3년이 걸린 것 같아요. 지프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며 몸이 부서져라 닥치는 대로 찍었습니다."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정착한 곳이 데스 밸리였다. 사막, 햇빛, 바람. 날것의 자연이 있는 한편, 폐허로 남아 있는 공장 지대가 자신의 처지 같았다. 폐허와 생명. 극단의 두 주제를 '도시'라는 테마 안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몬드리안의 색면 추상을 떠올린다. 선명한 색감과 건물의 실루엣이 화면을 면과 선으로 분할한다.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김우영의 사진에서 건물의 표면은 회화적 붓 터치로 캔버스에 켜켜이 덧바른 것 같은 효과를 낸다"며 최근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대표 추상화 '단색화'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해석했다. 문의 (02)549-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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