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聲의 '미녀와 야수' 위에 音色 입혔죠"

입력 : 2016.03.23 01:08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로 내한한 작곡가 필립 글래스

필립 글래스는 “우디 앨런, 마틴 스코세이지, 박찬욱처럼 영화계엔 재능 있고 기발한 인물이 많아 같이 영화음악을 만드는 게 재밌다”고 했다. /LG아트센터 제공

"제가 입맛대로 고른다기보다는 영화감독들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해볼래?' 제안을 받으면 그제서야 작곡을 시작하는 거예요. 영화음악 작곡이요? 재밌어요. 오페라나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보단 관객을 엄청 끌어모을 수 있는 영화음악을 만드는 게 수익은 훨씬 좋거든요."

여든을 앞둔 작곡가의 솔직한 발언에 웃음이 퍼졌다. 22일 서울 LG아트센터, 자신이 개척한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를 들고 내한한 작곡가 필립 글래스(Glass·79)는 "영화음악을 흔히 '배경' 음악이라 하지만 잘 만든 영화음악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준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할리우드 감독들한테 얘기하면 반응이 되게 싸늘해요. 예외는 있어요, 마틴 스코세이지. 그는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제게 도움을 청했어요. 박찬욱 감독은 일상에서 쓰는 언어를 남다른 스토리로 빚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고요. 그럴 땐 저도 신이 나서 음악만으로도 영화를 그려낼 수 있게 머리를 싸매죠."

글래스는 20세기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곡가다. 1970년대 단순한 선율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음악을 만들어 '미니멀리즘'이라는 파고를 일으켰다. 교향곡, 협주곡, 현악사중주 등 고전음악도 부지런히 작곡했지만 실험적 음악에 계속 도전해 오늘날 대중음악의 주류가 된 일렉트로닉 음악의 모태를 제공했다. 1980년대부터 '트루먼 쇼'를 비롯, '디 아워스', 박찬욱의 '스토커' 등 영화음악 40여편을 맡아 예술성과 대중성을 거머쥐었다.

소년 시절 글래스는 아버지의 음반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 "바르토크부터 비틀스까지 갖가지 음반을 섭렵하며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었다"고 했다. "처음에 음악은 언어라고 생각했어요. 수천 명 앞에서 말할 때랑 단둘이 대화할 땐 말투부터 달라지잖아요. 같은 맥락에서 누군가의 음악은 의미는 같아도 표현 방식은 달라야 한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5년 전 새롭게 얻은 해답은 '장소'였다. 몸이 실제로 갈 순 없지만 머리로는 따라갈 수 있는 곳. "서울, 샌프란시스코, 뉴욕처럼 음악은 장소였어요. 음악을 연주하거나 들을 때면 새로운 곳에 방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장 콕토의 흑백 무성영화 '미녀와 야수'가 무대에서 상영되는 가운데 글래스가 작곡한 음악이 필립 글래스 앙상블에 의해 연주된다.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등 성악가 네 명은 영상 속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그의 영화로 오페라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상 속 배우들과 무대 위 성악가들이 시공을 뛰어넘어 교감하면서 공연을 완성해가는 모습에 한국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미녀와 야수=23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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