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선웅, 배우들과 난장 콜라주…연극 '한국인의 초상'

입력 : 2016.03.14 09:38
연출가 고선웅(48·극단 마방진 대표)이 국립극단과 두 번째로 협업한 연극 '한국인의 초상'은 한바탕 난장의 소품이다.

12일 초연한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와 콘셉트에서 고선웅식 과장된 멋이 엿보이지만, 예전보다는 힘을 뺐다. 그가 구성·연출을 맡되 12명의 배우들과 공동창작을 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 '한국인의 초상'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고 연출이 아무리 넓은 시야를 갖고 있더라도, 좀 더 다양한 시각이 필요했다.

여러 미디어 보도와 배우들 또는 그들의 주변 이야기를 엮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27개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 배우들은 이를 바탕으로 즉흥연기를 했고, 고 연출과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선별·집필 과정을 거쳐 연극으로 완성됐다. 좀 더 객관성을 갖출 수 있게 된 이유다.

놀랍게 러닝타임 85분 안에 이 수많은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엮어내며 한국의 현재 모습을 스케치하는데 성공한다. 한국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주병 연주를 시작으로 출퇴근길 지옥철, 카톡 해고, 묻지마 범죄, 성형 권하는 사회, 대리 기사 셔틀, 마마보이, 인력시장, 도박판, 섹스리스와 원조교제, 온라인 게임에 빠진 이들 등이 메모된다.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블랙박스 극장인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 객석을 사면으로 깔아 관객들은 지켜본다는 느낌을 한층 더 갖게 된다. 그 중심에 마련된 무대는 마당놀이 판 같다. '24:00'가 아닌 '25:00' 등 다양한 기호와 그림 등이 적힌 그 판은 마치 사람들이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보드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 연출의 기존작인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겹쳐지기도 한, 거대를 지향하는 수컷들에서 그것 대신 대형 바게트를 사용하는 등 그의 재기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나면서 극은 끝날 때쯤 한국의 단면을 그린 풍경화로 자리매김한다.

아크릴판의 다양한 문구와 공연장 곳곳의 소품은 한국의 다양한 현재를 반영하는데, 이는 에피소드들과 오버랩되서 팝아트의 콜라주처럼도 보인다. 화면에 종이, 인쇄물, 사진 따위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처럼 다양한 요소를 난장처럼 엮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모습이 만들어진 셈이다.

다만 군대 후유증, 여성 혐오를 다룬 것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남자의 시각으로만 그렸다는 생각에 일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부정적인 내용들은 계속 나열되나 이처럼 무겁지 않다. 익숙한 곡들이 분위기를 환기한다.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마이 보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감독 세르지오 레오네·1984) 삽입곡 '아마폴라', 동요 '반달', 영화 '길'(감독 페데리코 펠리니·1954)의 주제곡 '길'(la strada), 샤데이'의 '스무드 오퍼레이터',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등 모두 저작권료를 지불한 곡들이 그런 역을 맡는다. 특히 BGM극으로 부를 만큼 상황과 곡이 딱 들어맞는 적확한 선곡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에피소드들을 보고 '헬조선'을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태양이 점차 떠오르듯 막판에 긍정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놀라운 묘가 발휘된다.

마지막 부분, 양극화에 따른 빈민의 삶을 노래한 트레이시 채프먼의 '패스트 카'를 배경으로 심야 버스에 힘겹게 몸을 실은 이들의 내용이 나온다.

이후 새벽, "나는 다시 일어나리"라고 노래하는 한대수의 '물 좀 주소'가 울려퍼지고 이 버스를 몬 노인 운전 기사가 밖으로 나와 손뼉을 치며 "해(sun) 보는 거야"라고 외친다. 사람들이 이를 따라하다 결국 '해(do) 보는 거야'로 치환되는 순간, 희망의 빛이 비친다. 소극장 판의 한쪽 벽면으로 난 네 개의 창이 순간 열리면서 실제 물리적으로 빛이 들어오는 순간.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유쾌해진다.

김정은, 백성광, 이기돈, 이동준 등 국립극단 시즌 단원들을 비롯해 구멍이 없는 앙상블을 보여준 배우 12명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동작들로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사회의 군상을 표현한다. 특히 발군은 올해 예순네살의 정재진. 극의 메시지로 요약되는 마지막 버스 운전자의 "해 보는 거야'도 그에 입에서 울려퍼지는데 몸을 아끼지 않고 다양한 역을 소화하며 큰 박수를 받는다. 그간 '햄릿'의 '오필리어, '프랑켄슈타인'의 '엘리자베스' 등 여성적인 캐릭터를 맡아온 전경수의 망가지는 모습도 마다하지 않은 연기도 볼 만하다.

28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예술감독 김윤철, 무대·소품 김교은, 조명 류백희, 의상 최윤정, 음악 김태규. 안무 김보람. 조연출 문새미 하수정, 조연출보 정다함. 3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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