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첫 내한
12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은빛 실크 드레스를 입고 2부 무대에 선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45)는 어깨 높이까지 솟은 지휘대 난간에 달빛 비치는 기둥처럼 살짝 기대어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중 루살카의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를 불렀다.
사방이 꽉 막힌 실내 공연장에 서늘한 달빛이 쏟아질 리 없건만 네트렙코는 드넓은 무대를 달빛 머금은 호수처럼 배회하며 쭉 뻗는 고음 속에 원숙미를 실었다. 베르디와 푸치니, 조르다노 등 여러 오페라 작곡가의 작품 중에서 대표 아리아를 뽑아 연주회처럼 골고루 선보이는 콘서트 오페라였기에 무대 위엔 그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가 전부였다. 하지만 먼 곳을 바라보며 "오, 달님! 부디 떠나가지 말아요!"라고 기도하는 그녀 주위로 없던 세트가 생겨나는 것처럼 노래와 연기는 농밀했다. 청중의 감정선을 가닥가닥 쥐고 타오르는 사랑('일 트로바트레' 아리아 '하늘엔 별도 없어라… 이 사랑 말로 할 수 없네')과 신(神) 앞의 겸손('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아리아 '저는 다만 창조주의 비천한 종일 뿐'), 이별 뒤의 애타는 심정('나비부인' 아리아 '어떤 갠 날')을 절묘하게 배치했다.
네트렙코의 한국 공연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탈리아 출신 자데르 비냐미니가 지휘한 코리안심포니는 '운명의 힘' 서곡을 비극적으로 잘 그려내 시작을 힘차게 알렸다. 다홍색 드레스를 입은 네트렙코가 무대에 나오자 합창석까지 가득 메운 청중은 환호와 박수로 그녀를 맞았다. 2014년 로마 국립 오페라 '마농 레스코'에서 만나 지난해 말 부부가 된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도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는 조르다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5월의 화창한 날에'가 좋았다. 특히 앙코르로 들려준 푸치니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에서 본인의 기량을 맘껏 터트렸다.
마지막, 오페라 '라 보엠' 중 미미와 로돌포의 이중창. 네트렙코와 에이바조프는 노래를 계속 부르면서 손을 잡고 대기실로 사라졌다.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아모르(사랑하오)! 아모르(사랑하오)!"에 대기실 안에서 먼저 '브라보'가 터졌다. 1부에서 네트렙코의 목이 덜 풀린 듯한 느낌은 아쉬웠지만, 합창석으로도 뒤돌아 무릎을 살짝 굽히고 인사하는 등 무대 매너와 공연장을 가득 채운 풍성한 성량은 명불허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