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24 03:00
| 수정 : 2016.03.04 14:42
[두 영웅]
예스럽게 꾸민 무대와 의상… 사명당·도쿠가와 氣싸움 볼만
일본의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처소를 방문한 사명당이 새장 속 새를 가리키며 묻는다. "이 새가 죽겠습니까, 살겠습니까?" 도쿠가와가 어이없다는 듯 "그거야 내 새니까 내 마음대로지…"라고 말하다 문득 눈을 크게 뜬다. "아,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군요!" 사명당이 말을 잇는다. "일본이 진심으로 과오를 사과해야 양국 간 화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조미료를 가득 친 식당 밥에 길들여진 사람이 어쩌다 고향 밥상 앞에 앉으면 어색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극작가 노경식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두 영웅'(사진·김성노 연출)은 역사물이 당연히 '퓨전'이어야 하는 것처럼 돼 버린 공연계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正統) 사극'이다. 무대와 의상은 예스러웠고, 연대기(年代記)에 가까운 극 진행은 느렸으며, 배우들의 대사는 현대 억양과 거리가 멀었다. '나변(那邊·어느 곳)' '연(然)이나(그러나)' 같은 고풍스러운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오히려 독특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직함은 뜻밖의 감동으로 이어진다. 연극은 임진왜란 종전 6년 뒤인 1604년 사명당 유정(惟政)이 대일강화사신으로 일본을 방문해 도쿠가와를 설득하고 조선 포로들과 함께 귀국한 역사적 사실의 뼈대를 바꾸지 않은 채 그 위에 차곡차곡 살을 붙인다. "역사 속에서 '그만 끝내기'라는 종지부는 없다" "일본의 침탈과 살육과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당신네의 영원한 책무이자 가시밭길"이라는 사명당의 준엄한 대사는 그대로 21세기 현재 일본을 향한 꾸짖음이 된다.
'노승 전문 배우'라는 별명까지 지닌 사명당 역의 오영수는 품위와 여유, 유머를 함께 갖춘 고승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 여인을 바다에 빠뜨리려는 동포들에게 "이 어리석은 중생들아!"라며 추상같이 꾸짖을 땐 객석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쩌렁쩌렁한 발성으로 노회한 정치가의 모습을 표현한 도쿠가와 역 김종구와의 기(氣) 싸움도 볼만했다.
▷2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 110분, (02)352-0766
조미료를 가득 친 식당 밥에 길들여진 사람이 어쩌다 고향 밥상 앞에 앉으면 어색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극작가 노경식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두 영웅'(사진·김성노 연출)은 역사물이 당연히 '퓨전'이어야 하는 것처럼 돼 버린 공연계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正統) 사극'이다. 무대와 의상은 예스러웠고, 연대기(年代記)에 가까운 극 진행은 느렸으며, 배우들의 대사는 현대 억양과 거리가 멀었다. '나변(那邊·어느 곳)' '연(然)이나(그러나)' 같은 고풍스러운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오히려 독특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직함은 뜻밖의 감동으로 이어진다. 연극은 임진왜란 종전 6년 뒤인 1604년 사명당 유정(惟政)이 대일강화사신으로 일본을 방문해 도쿠가와를 설득하고 조선 포로들과 함께 귀국한 역사적 사실의 뼈대를 바꾸지 않은 채 그 위에 차곡차곡 살을 붙인다. "역사 속에서 '그만 끝내기'라는 종지부는 없다" "일본의 침탈과 살육과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당신네의 영원한 책무이자 가시밭길"이라는 사명당의 준엄한 대사는 그대로 21세기 현재 일본을 향한 꾸짖음이 된다.
'노승 전문 배우'라는 별명까지 지닌 사명당 역의 오영수는 품위와 여유, 유머를 함께 갖춘 고승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 여인을 바다에 빠뜨리려는 동포들에게 "이 어리석은 중생들아!"라며 추상같이 꾸짖을 땐 객석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쩌렁쩌렁한 발성으로 노회한 정치가의 모습을 표현한 도쿠가와 역 김종구와의 기(氣) 싸움도 볼만했다.
▷2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 110분, (02)352-0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