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용의자, 알고 보니 눈앞에 있었네

입력 : 2016.02.18 03:00   |   수정 : 2016.03.04 14:36

[연극 리뷰] 얼음

장진이 극작·연출 맡은 신작
실체 없는 범인과 대화하는 형사… 90분 내내 관객 몰입시켜

어딘가 음산하고 고립된 듯한 방에 한 남자가 들어와 앉더니 탁자에 놓인 서류를 들춰 보며 중얼거린다. "글씨 좀 크게 뽑으라니까…. 나이 먹으면 이런 게 안 좋아." 혼잣말인 줄 알았던 관객은 다음 대사에서 흠칫 놀란다. "유치장에서 잔 사람치고는 모습이 말짱하네. 화장실 가고 싶으면 말하고." 그곳은 경찰서 취조실. 관객 눈엔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테이블 반대편에서 객석을 등지고 앉아 있(다고 치)는 것이다.

연극판으로 돌아온 장진이 극작과 연출을 맡은 신작 '얼음'은 공연 시간 90분 내내 관객을 몰입시키는 보기 드문 스릴러극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는 단 두 명. 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치밀한 '형사1'(박호산), 거칠어 보이지만 정이 많은 '형사2'(김무열)다. 조사를 받는 인물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두 배우는 투명인간을 보기라도 하듯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연극 ‘얼음’의 박호산(왼쪽)과 김무열. /수현재컴퍼니 제공
연극 ‘얼음’의 박호산(왼쪽)과 김무열. /수현재컴퍼니 제공

사건의 실체는 형사들이 무심한 듯 내뱉는 대사를 통해서 서서히 드러난다. "교실에서 수갑 채우거나 그러지 않았지?" 이런, 용의자는 고등학생이다. "음, 보자…. 여섯 등분을 했고, 머리랑 오른쪽 다리는 아직 안 나왔고." 헉, 토막 살인 사건이었다. 관객은 용의자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없고 형사들의 대사와 표정을 통해서 유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긴장감은 점점 치솟는다.

시종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결정적 순간 갑자기 "혁아, 누나 머리 어딨니?" 하고 몰아세우는 박호산이나, 극 내내 건들거리며 욕설을 퍼붓다가 망연한 표정으로 "이제 그만 울어라"고 말하는 김무열의 연기는 실제 경찰서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리얼리티의 순도가 높았다. 연극은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커튼콜이 끝나고 나서도 관객을 추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공연 뒤 로비에서 만난 연출가 장진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이라고 털어놨다. 어느 쪽이나 소름 끼치는 건 마찬가지니 이를 어쩌나.

▷3월 20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02)766-6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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