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지휘자, 신비감을 유지하는 방법

입력 : 2016.01.07 03:00   |   수정 : 2016.02.29 14:01

게르기예프·리카르도 샤이 등 단원과 다른 항공사·호텔 이용
"풀어진 모습 노출하는 것 꺼려" 반면 허물없이 지내는 지휘자도

세계 정상급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빈체로 제공
세계 정상급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빈체로 제공
이달 말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고 방한하는 이탈리아 출신 명(名)지휘자 리카르도 무티(75)는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에서 가까운 서울 반포의 JW메리어트 호텔에 짐을 푼다. 단원들도 전부 그 호텔에 묵는다. 내한 때마다 단원들과 같은 호텔에 투숙하는 지휘자는 또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사이먼 래틀(61)이다. 지휘자와 단원은 역할만 다를 뿐 음악가로서의 대우는 같아야 한다는 베를린 필의 독특한 분위기에 따라 서로 허물없이 지낸다. 비행기도 같은 걸 타고 다닌다.

순회공연하러 다니는 교향악단 지휘자와 단원들은 같은 비행기와 호텔을 이용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음악계 관계자들은 "무티와 래틀은 드문 경우"라며 "지휘자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거장(巨匠)일수록 별도 호텔, 별도 항공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연주여행 계약서를 쓸 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다른 호텔에 묵는다'는 조항을 아예 못 박는다. 호텔에 같이 묵고 따로 묵는 것에서 지휘자마다 다른 '오케스트라 리더십'을 읽어낼 수 있다.

지난해 11월 뮌헨 필하모닉과 내한했던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 발레리 게르기예프(63)는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 호텔에 머물렀다. 반면 단원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에 앞서 BBC필하모닉과 왔던 스페인 지휘자 후안호 메나(51)도 리츠칼튼에서 잤다. 그 시각 오케스트라는 경기도 성남에 있는 판교 메리어트 호텔에 있었다. 재작년 타계한 로린 마젤은 '음악계의 제왕'이란 위상에 걸맞게 어느 도시를 가든 최고급 호텔에만 묵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리카르도 샤이(63)는 투어에 늘 아내를 대동하는 소문난 '애처가'다.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79)도 부부 동반이 잦다. 그럴 땐 대개 오케스트라와 먼 숙소를 잡는다.

반면 지난해 4월 한국에 왔던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셔(65)는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에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먹고 잤다. 부모가 30년 넘게 뉴욕 필하모닉 단원으로 활동해 '뉴욕 필 키드(kid)'로 알려진 앨런 길버트(49)도 단원들과 가족처럼 지낸다. 명지휘자 네메 예르비의 장남 파보 예르비(54)는 특이한 케이스다. 단원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해 단원 숙소 바로 옆 호텔을 잡아 밤마다 인근 술집으로 단원들을 불러낸다. 그러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연주 피로를 풀고 다음 여정지로의 시차를 조절한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팀장은 "지휘자들은 밥 먹으러 식당에 왔다가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거나 또는 아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단원들과 떨어져 있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마렉 야노프스키(77) 같은 거장들은 단원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는 것이 신비감을 유지하는 한 방편이라 여긴다.

그런 성향은 비행기를 탈 때도 비슷하다. 공연기획사 빈체로 송재영 부장은 "지휘자는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을 주로 타기 때문에 이코노미석을 타는 단원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 한다"며 "오랜 시간 비행하느라 꾀죄죄해진 차림으로 짐 찾는 모습 등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도 단원들과 다른 항공편을 이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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