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감정에 가장 충실한 언어, 재즈"

입력 : 2015.12.31 00:04

'박근쌀롱' 재즈 드러머 박근혁, 2집 '현재의 발견' 내
듣기 편하게 재해석한 11곡 "올드팝 같은 감성 담으려 했죠"

박근혁은 서울 연남동의 작업실에서 먹고 자며 음악을 만든다. 그는“음악과 생활이 하나인 셈인데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며 웃었다. /남강호 기자
재즈가 듣고 싶긴 한데 어려울 것 같아 지레 겁먹은 사람이라면 박근혁(43)의 음악을 들어봐야 한다. 찰리정(기타), 배장은(피아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밴드 '박근쌀롱'을 이끄는 재즈 드러머인 박근혁은 최근 2집 '현재의 발견'을 냈다. 따뜻한 느낌의 선율 돋보이는 타이틀곡 '집으로'부터 사랑의 이중적인 감정을 상반된 음악으로 표현한 '행복'과 '집착' 등 11곡의 수록곡 모두 가요 같은 노래를 재즈로 재해석한 듯 듣기 편하면서도 수려하다. 작업실에서 만난 박근혁은 자기 음악처럼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제 음악은 사실 정통 재즈와는 거리가 있죠. 개인적으로 올드 팝에 담긴 감성을 좋아하는데, 그런 감성을 재즈라는 틀을 통해 표현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도 재즈 공부는 정통으로 했다. 홍익대 경영학과에 다니다가 음악에 빠져 학교를 관두고 미국 버클리 음대에 가서 재즈를 전공했다. "처음엔 좋아하는 여자애가 '드럼 치는 남자가 멋있다'고 말해서 드럼을 치기 시작했어요. 근데 막상 드럼을 열심히 배워서 쳐주니 그 말을 기억 못하더라고요(웃음). 그러다가 시작한 음악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그는 재즈를 사랑에 빗댄다. "재즈는 순간적인 느낌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장르예요. 사랑의 감정을 고백할 때 그 순간의 마음에 가장 충실한 언어를 찾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2집 역시 현재라는 순간순간의 마음을 음악에 담으려고 했다. 숙취로 고생한 다음 날의 고생스러운 기분을 재치 있게 표현한 '괄라'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리저리 내달리는 드럼 소리가 흔들리는 다리라면 묵직한 기타 소리는 더부룩한 배 속 같다. 만취를 뜻하는 '꽐라'라는 은어를 굳이 '괄라'라고 한 것은 박근혁 특유의 '썰렁' 개그다. "제가 개그 프로그램을 많이 보거든요. 근데 '개그콘서트'에서 한 개그맨이 '괄라'라고 하는 게 그렇게 웃기더라고요. 기억해뒀었는데 숙취에 시달리며 곡을 쓸 때 그게 떠오르더라고요."

정상급 재즈 연주자이면서 4년 전 1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까지 받았지만, 지독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연인과 이별하고 엄마처럼 돌봐준 할머니까지 잃으며 목숨 같던 드럼채와 작곡 노트를 손에 내려놓고 살았다. "그렇게 바닥까지 가보니 제 진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서서히 현재의 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2집 타이틀도 '현재의 발견'이다. 덕분에 우리 역시 더 발전한 한 명의 음악가를 다시 발견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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