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즐기세요, 당신을 치유할테니"

입력 : 2015.12.31 00:12

[2016 빈 필 신년음악회 지휘 맡은 마리스 얀손스 인터뷰]

2006·2012년 이어 세 번째 무대
"항상 새롭고 흥분되는 연주회… 지휘봉 잡는 것 자체가 영광"

/소니뮤직 제공
"내가 그런 연주회를 지휘하다니! 엄청난 영광이었어요. 동시에 아주 즐거웠죠. 매너 좋은 관객들, 고풍스러운 음악당 분위기, 최고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까지 모든 것이 항상 새롭고 흥분되는 뭔가를 선사해주니까요."

라트비아 출신의 명(名)지휘자 마리스 얀손스(Jansons·72·작은 사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 늦은 저녁이었다. 해마다 1월 1일 낮 12시(현지 시각)가 되면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 골든홀에선 빈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신년 음악회가 열리는데, 얀손스는 내년 첫날 연주회의 지휘를 맡았다. 2006년과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오르는 무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지휘자의 목소리는 점잖으면서도 따스했다. 예전 신년 음악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우선 끝나서 기뻤다. 다행히 관객들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빈 필 신년 음악회는 요한 슈트라우스 1·2세 부자(父子)의 춤곡이나 행진곡처럼 밝고 경쾌한 음악을 주로 연주하기에 새해 분위기에 안성맞춤이다. 전 세계 90개국에 TV로 생중계하고, 실황 음반과 DVD가 발매된다. 빈 필 신년 음악회는 2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39년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시작됐다. 그땐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열렸다. 1980년대 들어선 매년 당대 최고 지휘자를 초대해서 누가 지휘봉을 잡느냐도 초미의 관심사다. 얀손스는 앞선 공연들에서 당대의 전설적 지휘자 카라얀과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맞먹는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첫째 날인 만큼 무엇보다 환한 기대감을 안겨주고 싶다"며 "음악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예술"이라고 했다.

지난해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에서 인도 출신 지휘자 주빈 메타와 빈 필 단원들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인사하고 있다. /빈 필하모닉 제공
지난해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에서 인도 출신 지휘자 주빈 메타와 빈 필 단원들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인사하고 있다. /빈 필하모닉 제공
"최근 파리에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정치적인 것과 신년 음악회를 연관시키진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일부러 특정한 곡을 연주하진 않을 거지만 저희 역할은 미래를 향한 기대와 자유를 선사하는 거니까 그 역할에 충실할 거예요. 음악회를 통해 기쁨에 찬 에너지가 듬뿍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해 지휘자의 개성에 맞춰 새로운 곡을 선사하는 것도 음악적 별미다. 2012년엔 차이콥스키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중 '정경'과 '왈츠'를 연주했다. 이번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 슈톨츠의 행진곡을 선보인다. 얀손스는 "1945년에 쓰인 곡인데, 올해 딱 70주년이 됐다"며 "지구촌 화합을 노래한 곡이 꾸준히 사랑받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 했다.

이번 음악회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자 70대 지휘자는 껄껄 웃었다. "있는 그대로 즐기세요. 다만 저는 머릿속이 복잡할 겁니다. TV로 시청하는 분이 많아 끝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하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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