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직 던진 정명훈 "1년간 너무나 모욕을 당했기에…"

입력 : 2015.12.30 03:00   |   수정 : 2015.12.30 10:39

[오늘의 세상]

- 10년간 이끈 서울시향 송년회서 마지막 토로

어제 단원들과 비공개 저녁… 그의 발자취 영상 나오자 얼굴 감싸며 눈물 짓기도
"한 사람의 거짓말 때문에 업적 무색… 가슴 아파"

"지난 1년간 너무나 모욕(insult)을 많이 당했기에 오히려 고마운 심정입니다. 결정은 오히려 쉬웠어요."

29일 예술감독 사임 의사를 밝힌 지휘자 정명훈(62)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열린 시향 송년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모임에서 정 감독은 "내 유일한 선택은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말하거나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침묵을 택했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예술감독 계약 연장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우회적으로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단원들과 함께… - 서울시향을 완전히 떠나기로 한 지휘자 정명훈 예술감독이 2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서울시향 송년회에 참석한 모습. 정 감독은 29일 서울시향 단원과 직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김지호 기자
단원들과 함께… - 서울시향을 완전히 떠나기로 한 지휘자 정명훈 예술감독이 2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서울시향 송년회에 참석한 모습. 정 감독은 29일 서울시향 단원과 직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김지호 기자
정명훈 사퇴…“박현정 거짓말로 서울시향 업적 무색해져” TV조선 바로가기
정 감독은 이날 연설에서 서울시향 예술감독 계약 연장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갈등이 있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정 감독은 "(사임) 결정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미 지난해에 그만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콘서트홀을 짓지 않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 1~2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최근 콘서트홀 건립 방안을 발표했지만, "콘서트홀을 진짜 할지는 모르지만, 예산을 또 깎을지는 모르지만…"이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서울시향 단원·직원과 아들인 지휘자 정민 부부 등 100여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정명훈 감독은 10분 가까이 연설했다. 당초 이날 모임은 서울시향 송년회를 위해 마련됐지만 정 감독이 이날 오후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만찬은 그를 위한 '석별의 자리'가 됐다. 정 감독은 서울시향 외국인 단원들을 위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연설했다. 정씨는 지난 10년의 서울시향 발자취를 담은 영상이 흐를 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30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 지휘를 마지막으로 2006년부터 10년간 서울시향을 이끌어 온 정 감독은 서울시향과 완전히 결별한다. 정 감독은 29일 정오쯤 최흥식 서울시향 대표를 만나 사의를 밝히고, 단원들에겐 편지를 보내 예술감독을 그만둔다는 뜻을 전했다. 자필 편지에서 그는 "서울시향 단원 여러분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정 감독은 내년에 지휘하기로 했던 서울시향 정기 공연 아홉 차례도 모두 취소했다. 그는 "음악보다 더 높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며 "(직원들이)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는데, 그 사람들이 오히려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인간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울시향은 2005년 정 감독을 예술고문으로 영입하기 직전 38.9%이던 유료 객석 점유율이 10년 만인 올해 92.8%를 기록할 만큼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서울시향의 내년 정기 공연에 대해서 최 대표는 "정 감독을 대체할 지휘자를 찾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지만 곡 자체가 어려워 대체 지휘자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나를 포함해 시향 모든 단원이 황망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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