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24 00:09
[문화 혁신의 기원을 가다]
[크리에이티브 로드][9] 예술가들의 천국, 베를린
런던보다 48% 저렴한 물가, 풍족한 문화 기반 시설 덕에 전세계 젊은 예술가들 모여
통독 직후 늘어난 빈 건물… 대안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東·西베를린 합쳐지니 미술관·박물관 등 他도시 2배… 예술, 통독의 틈 잇는 접착제"

"노이쾰른(Neukolln)요? 예술의 다른 이름이랄까? 여기선 모든 게 가능해요. 다음 주엔 예술가 친구들하고 동네 허름한 화장실에서 전시할 거예요. 세상 어느 곳에서 이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요?"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있는 카페 '아고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카페 귀퉁이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던 스물일곱 살 스페인 아가씨 아이디 브레솔리가 스스럼없이 이방인을 반긴다. 고향 바르셀로나를 떠나 독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대학에서 유학한 그녀는 4년 전 낯선 땅 베를린으로 왔다. "바르셀로나나 바이마르엔 없는 활력이 이곳에선 넘쳐요."
'분단의 상징' 베를린이 젊은 예술가의 '기회의 땅'이 됐다. 전 세계에서 온 2만명의 예술가가 이 도시에서 희망을 지핀다.
◇서울보다 싼 유럽 도시, 가난한 젊은 예술가를 부르다
"베를린으로 온 이유요? 첫째 싸다. 둘째 예술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베를린 외곽 베딩(Wedding) 에 있는 우퍼할렌(Uferhallen)에서 만난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 작가 볼프강 간터(38)가 말했다. 우퍼할렌은 베를린교통공사 BVG가 쓰던 차고 2500㎡(756평)를 바꿔 만든 예술가들의 집단 창작소. 카타리나 그로세 등 작가 60여명이 둥지 튼 곳이다. "55㎡(17평)인데 25년간 월세 300유로(약 38만원)에 계약했어요. 정말 독일 다른 곳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에요." 밴드 'AC/DC'의 로고 A가 선명히 붙은 작업실에서 간터가 '러키(lucky)'를 연발했다.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있는 카페 '아고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카페 귀퉁이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던 스물일곱 살 스페인 아가씨 아이디 브레솔리가 스스럼없이 이방인을 반긴다. 고향 바르셀로나를 떠나 독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대학에서 유학한 그녀는 4년 전 낯선 땅 베를린으로 왔다. "바르셀로나나 바이마르엔 없는 활력이 이곳에선 넘쳐요."
'분단의 상징' 베를린이 젊은 예술가의 '기회의 땅'이 됐다. 전 세계에서 온 2만명의 예술가가 이 도시에서 희망을 지핀다.
◇서울보다 싼 유럽 도시, 가난한 젊은 예술가를 부르다
"베를린으로 온 이유요? 첫째 싸다. 둘째 예술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베를린 외곽 베딩(Wedding) 에 있는 우퍼할렌(Uferhallen)에서 만난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 작가 볼프강 간터(38)가 말했다. 우퍼할렌은 베를린교통공사 BVG가 쓰던 차고 2500㎡(756평)를 바꿔 만든 예술가들의 집단 창작소. 카타리나 그로세 등 작가 60여명이 둥지 튼 곳이다. "55㎡(17평)인데 25년간 월세 300유로(약 38만원)에 계약했어요. 정말 독일 다른 곳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에요." 밴드 'AC/DC'의 로고 A가 선명히 붙은 작업실에서 간터가 '러키(lucky)'를 연발했다.

호주머니 얇은 예술가들은 숙명적으로 저(低)물가를 따라가기 마련. 베를린이 예술가들의 천국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싼 물가다. 글로벌 온라인 물가 비교 사이트 'Numbeo'에 따르면 23일 현재 베를린의 물가(집세 포함)는 런던보다 47.92% 싸고, 서울보다도 25.88% 싼 것으로 나온다.
특히 살인적 고물가에 시달리는 영국 예술가들이 베를린에 몰리고 있다. 런던에서 3년 전 베를린으로 온 헤어디자이너 줄리 브라운(40)씨는 "런던에서 그나마 싸다는 이스트 런던의 집값도 이제 너무 비싸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스트 런던 다음은 베를린'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했다. 몇 달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창의적인 영국 젊은이들이 엑소더스처럼 베를린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문화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 도심에 산재해 있다는 것도 베를린의 매력. 통독 직후 동베를린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이주하면서 버려진 건물이나 문 닫은 공장이 많이 생겼다. 1990년대 초반 이런 건물을 예술가들이 무단 점령해 대안 예술 공간으로 삼았다. '스쾃(Suat)'이라 불리는 예술 공간 점유 운동이다. 그라피티로 뒤덮인 미테 지역의 '타헬레스(Tacheles)'는 베를린의 스쾃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지만 3년 전 부동산개발회사에 건물이 팔리면서 문 닫았다.
◇분단의 유산을 역이용하다
싼 물가에만 예술가들이 응답한 건 아니다. 예술에 영감을 줄 문화 시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도 중요했다. "1년 평균 비 오는 날(약 106일)보다 박물관 수(175개)가 많은 도시, 오페라 하우스가 3개인 유일한 도시." 베를린 관광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나오는 문구다. 인구 350만명, 부산만 한 인구에 극장이 50여개, 영화관이 300여개다.
특히 살인적 고물가에 시달리는 영국 예술가들이 베를린에 몰리고 있다. 런던에서 3년 전 베를린으로 온 헤어디자이너 줄리 브라운(40)씨는 "런던에서 그나마 싸다는 이스트 런던의 집값도 이제 너무 비싸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스트 런던 다음은 베를린'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했다. 몇 달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창의적인 영국 젊은이들이 엑소더스처럼 베를린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문화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 도심에 산재해 있다는 것도 베를린의 매력. 통독 직후 동베를린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이주하면서 버려진 건물이나 문 닫은 공장이 많이 생겼다. 1990년대 초반 이런 건물을 예술가들이 무단 점령해 대안 예술 공간으로 삼았다. '스쾃(Suat)'이라 불리는 예술 공간 점유 운동이다. 그라피티로 뒤덮인 미테 지역의 '타헬레스(Tacheles)'는 베를린의 스쾃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지만 3년 전 부동산개발회사에 건물이 팔리면서 문 닫았다.
◇분단의 유산을 역이용하다
싼 물가에만 예술가들이 응답한 건 아니다. 예술에 영감을 줄 문화 시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도 중요했다. "1년 평균 비 오는 날(약 106일)보다 박물관 수(175개)가 많은 도시, 오페라 하우스가 3개인 유일한 도시." 베를린 관광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나오는 문구다. 인구 350만명, 부산만 한 인구에 극장이 50여개, 영화관이 300여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가 풍족한 문화 시설을 갖게 된 연원은 분단이다. 통독 이후 베를린은 너무나 가난한 도시였다. 정책 담당자들이 머리 맞대고 보니 눈에 띈 게 문화 시설이었다.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박물관 같은 문화 시설을 각각 가지고 있었던 동베를린, 서베를린 두 도시가 합쳐졌으니 이들 문화 시설의 수가 다른 도시의 2배였다.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전(前) 베를린 시장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poor but sexy city)'를 슬로건으로 예술 지원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쳤다.
베를린 시 정부는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시행할 수 있는 전문 회사 '컬처프로젝트(Kulturprojekte) 베를린'을 설립했다. 이 회사 토르스텐 뵐러트 부대표는 "예술가가 들어가 낙후됐던 동베를린 지역이 세련된 지역으로 변했다"며 "예술은 동·서독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라진 틈을 이어주는 접착제이자, 베를린의 엔진"이라고 설명했다.
베를린 시 정부는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시행할 수 있는 전문 회사 '컬처프로젝트(Kulturprojekte) 베를린'을 설립했다. 이 회사 토르스텐 뵐러트 부대표는 "예술가가 들어가 낙후됐던 동베를린 지역이 세련된 지역으로 변했다"며 "예술은 동·서독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라진 틈을 이어주는 접착제이자, 베를린의 엔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