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서 살아온 인생… 미친 짓이지만 행복했다"

입력 : 2015.12.24 00:35

백성희 헌정 송년회 연 국립극단

"지방 공연을 함께 가면 꼬박 밤을 새워서 공연 준비를 하셨어요. 단원들이 선생님과 제가 같이 쓰는 방에 몰려오면 온 방 안에 담배 연기가 가득했는데, 쪼그려 자는 절 보시곤 '아기가 이 소란 속에 잘도 잔다'고 하셨어요. 그러고선 아침이면 맨손체조를 하시고…."

지난 22일 저녁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배우 손숙(71)이 옛 추억을 떠올렸다. 회고 속 '선생님'은 원로 배우 백성희(白星姬·90)였다. 이날 열린 국립극단 송년회는 온통 백성희 한 사람에 대한 '헌정 송년회'였다. 그의 73년 연기 인생을 담은 회고록 '연극의 정석'(김남석 편, 연극과인간) 발간에 맞춰, 1950년 국립극단 창단 때부터 단원으로 활동해 온 그의 업적을 되새기는 행사가 함께 진행됐기 때문이다.

22일 열린 국립극단 심포지엄에서 배우 박정자가 백성희의 회고록을 낭독하고 있다. /유석재 기자
22일 열린 국립극단 심포지엄에서 배우 박정자가 백성희의 회고록을 낭독하고 있다. /유석재 기자

행사 제목은 '연극인 심포지엄―국립극단 65년과 백성희'. 임영웅, 이순재, 박웅, 권성덕, 박정자, 심양홍, 남명렬, 송승환을 비롯한 연극계 인사 200명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백성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건강이 갑자기 악화돼 입원했기 때문이다.

본명 이어순이(李於順伊)로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성희는 1943년 현대극장 '봉선화'로 데뷔했으며, 낙랑극회·신협에서 활동했다. 1972~1974년과 1991~1993년 국립극단장을 맡았고, 2011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이 세워졌다.

이날 패널로 나온 박상규 전 국립극단장은 "낮엔 연극 연습, 밤엔 창과 춤을 배우면서도 연극인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섰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2004년 자전적 연극 '길'에 함께 출연했던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팔순에 무대에 선 백성희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잠깐 대사를 잊어버리시곤 무척 우아한 모습으로 절 바라보셨는데, 정말이지 그 존재만으로도 완벽한 배우셨어요." 이어 백성희의 평소 육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난 이 길을 걸어 왔어, 비극인지 희극인지 평생 모르는 채 말이야. 미친 짓이지. 그런 세상 속에 살면서 난 행복해, 난 배우였으니까." 곳곳에서 눈시울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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