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성수동 대림창고서 열린 '서울시향의 창고 음악회']
공연 직전까지 700명 넘게 몰려… 바이올린 김수연 연주에 환호
"손때 묻어있는 투박한 공간서 시민과 음악 즐긴 특별한 시간"
서울시향이 이곳에서 '창고 음악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받은 성동문화재단에는 공연 직전까지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1970년대 정미소로 사용된 대림창고는 요즘 잿빛 공장지대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로 환골탈태했다. 4년 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해 패션쇼와 촬영 스튜디오, 각종 이벤트 행사와 힙합·재즈·인디밴드 공연 등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장으로 시끌벅적하다.
"여기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는 건 처음인걸요." 근처 수제화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는 김송주(23)씨는 "날마다 이 앞을 지나다니는데 오늘 특별한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다. "클래식은 어렵잖아요.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거의 들어본 적 없는데 오랜만에 눈앞에서 클래식 연주회를 볼 수 있다니까 설레요."

음악회를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외벽에 내걸렸다. 부슬비 흩날리는 가로등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공연 한 시간 전, 엄마 손 잡고 온 꼬마들, 팔짱 낀 연인들, 나란히 찾아온 중년 부부 등 관객들은 서울시향과 성동문화재단이 준비한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들고 녹슨 철문 안으로 속속 입장했다. 좌석이 따로 없는 전석 스탠딩 공연이었으나 800명 수용 가능한 창고엔 700명 넘는 시민이 모여 떠들썩했다. 구멍 숭숭 뚫린 무대는 팝아티스트 찰스장(39)이 다홍색 네온사인을 슬쩍 구부려 만든 하트 모양 장식물로 꾸몄다. 철제 계단은 키 작은 초등학생들이 차지했다.
공연 직전, 창고 구석 골방에 마련된 간이 대기실에서 만난 최수열(36) 서울시향 부지휘자는 "예전부터 공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싶었다. 층고가 높고 인테리어가 일절 없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시원하게 잘 울려 퍼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투박한 공간에서 시민들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고 싶었어요."
오후 8시, 서울시향 단원 60명이 무대로 나와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의 '로만체'. 곡목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오케스트라 선율에 비올라 수석 홍웨이 황의 풍부한 음색이 실리자 관객들은 음악에 편안히 몸을 맡겼다. 이어진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협연 김수연) 연주가 끝났을 땐 "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차이콥스키의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마무리한 이날의 음악회는 그야말로 대성공. 연주 중간에도 창고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관객 대부분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속살을 거칠게 드러낸 시멘트벽, 군데군데 이 빠진 벽돌, 철사로 얼기설기 박아넣은 창살까지 '예순한 번째 단원'이 되어 시민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예술의전당 근처에 살아도 정작 공연장에 가본 적 없다"는 시민 권희명(60)씨는 "언니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따라왔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 좋다"고 했다. "음악이 이런 거군요. 갈가리 찢겨 있던 심장이 하나로 모이는 느낌이 드네요." 은성환(36)씨는 "올해가 가기 전, 맨날 마시는 술 대신 나한테 값진 선물을 해주자 해서 왔는데 오길 정말 잘했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떠나는 오케스트라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새 비 그친 창고 밖 인도는 음악회 여운을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한참 동안 흥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