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변의 카프카'
미야자와 리에(宮澤りえ). 내한 공연 중인 일본 연극 '해변의 카프카'에서 십대 소녀와 중년 도서관 관리자의 1인 2역을 맡은 42세 여배우다. 20여년 전 화보집 '산타페'로 현해탄 건너편 남심(男心)마저 뒤흔들었던 왕년의 아이돌은 이제 원숙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됐다. 그녀가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단아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로 깊은 호수 같은 눈망울을 객석으로 돌릴 때, 연극의 신비로움은 최고조에 달했다.
"세상의 끝까지 간다 해도… 시간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거야." 이 극 중 대사는 시공간을 초월한 연극 무대에서 그대로 실현되는 듯했다. 노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는 일찍이 '시작 3분 안에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했거니와, '해변의 카프카'는 3분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거실, 도서관, 공원, 숲, 트럭, 고속도로 휴게소, 자동판매기, 그리고 사람. 시간의 거미줄 위에 얽히고설킨 온갖 '공간'이 거대한 투명 아크릴 상자 26개 속에 통째로 담겨 복잡한 동선을 타고 무대 위를 끊임없이 유영하듯 맴돌았다. 닌자처럼 검은 옷을 입은 스태프들이 이 상자를 뒤로 밀면, 돌연 카메라를 뒤로 빼는 영화의 '풀 백 달리' 기법이 연극에서 구현되는 경이로운 순간과 만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원작 소설, 니나가와 유키오의 연출로 2012년 일본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두 거장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가출한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 전쟁 중 의문의 사고로 지능이 저하됐지만 고양이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노인 나카타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원작의 그리스 비극적 요소가 상당 부분 휘발된 반면, '변신' 등 카프카 소설의 초현실적 분위기는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하루키 소설의 정치(精緻)한 심리 서술과 현학적이면서 몽환적인 문체는 종종 독자로 하여금 책 읽는 시간 자체를 호화롭게 느끼도록 하는데, 이 맛을 잘 살린 연극 역시 러닝타임 세 시간이 넘도록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28일까지 LG아트센터, 공연 시간 190분,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