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데미안 라이스, 사전 셋리스트 대신 준비한 진심

입력 : 2015.11.23 10:10
데미안 라이스,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홀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 최소한의 조명으로 꾸미는 단출함, 자신의 음악적 솔메이트였던 아일랜드 가수 리사 해니건(36)과 함께 부른 곡으로 돌림이 인상적인 '볼케이노'를 팬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꾸미는 순간.

2012년 1월 첫 내한 공연 이후 매년 한국을 찾고 있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이미언 라이스(42)의 공연에서 빠질 수 없는 전매특허다.

그럼에도 매번 신선함이 깃든 진실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진정성 때문이다. 라이스는 다수의 다른 뮤지션들과 달리 셋리스트를 미리 만들지 않는다. 그날 감정이 내키는 순서대로 노래한다.

22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펼쳐진 네 번째 내한공연 겸 두 번째 단독 내한공연의 첫 곡은 '델리케이트(Delicate)'였다.

한국에 오기 직전 미국에서 벌인 투어의 첫 공연인 지난 8일 현지 무대에서 첫 곡은 '더 프로페서 & 라 피 당스(The Professor & La Fille Danse)', 두 번째 무대인 9일 첫곡은 '아이 리멤버', 마지막 6번째 무대의 첫 곡은 '올더 체스트'였다. 아일랜드의 음유시인은 정말 그날을 노래하는 셈이다.

그로 인해 쌓아지는 건 자연스런 추억의 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콜드 워터(Cold Water)'를 부를 때 여성 팬을 무대 위로 올려 함께 불렀고, 2시간10분 장정의 마지막곡인 '볼케이노'에서는 역시 100명 이상이 팬들이 무대 위에서 그를 빙 둘러쌌다.

물론 노래, 그 자체 힘만으로도 대단했다. 오페라 하우스처럼 느껴지는 평화의전당의 거대한 내부도 노래와 단출한 몇몇 조명만으로 끌고가는 라이스에게는 소극장이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3500명은 그가 노래할 때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앙코르 곡 중 하나로 라이스의 대표곡인 '더 블라워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에서는 그의 목소리 외에 다른 소리들은 압축된 듯했다.

이름 중 라이스가 한국에서는 쌀을 뜻하는 만큼 '쌀아저씨'로 통하는 그는 잦은 농담과 함께 곡마다 친절한 설명도 곁들이는 등 친근했다. 이제 한국을 집처럼 느낀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소리 지른 팬에게 한국 사람들이 '엘(L)'과 '알(R)' 발음의 차이를 정확하게 발음하기 힘들다며 계속 '엘' 발음을 하거나,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계속 세워지는 높은 빌딩을 성적인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홀로 올랐음에도 다양한 사운드의 질감과 쾌감을 느끼게 하는 강렬한 무대도 있었다. 앙코르 전, 본 무대의 마지막곡으로 9분 가량의 대곡인 '잇 테이크스 어 랏 투 노 어 맨(It Takes A Lot To Know A Man)'을 들려줄 때가 화룡점정이었다. 악기 연주와 목소리를 바로 녹음해 반복해서 들려주는 장치인 '루프 스테이션'을 사용했다. 라이스가 차례로 하나씩 연주한 어쿠스틱 기타, 클라리넷, 북, 일렉 기타 등의 소리가 점층적으로 반복되고 쌓이면서 거대한 하나의 사운드 우주를 만들어냈다. 음유시인의 사자후나 다름 없었다. 상반기 팝스타 내한공연 중 루프 스테이션으로 공연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뮤지션은 에드 시런이었다. 시런이 재기발랄했다면, 라이스는 몽환적이고 애절했다. 아무렇지 않게 헝크러진 머리와 수염이 이보다 섹시할 수 없었다.

24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이어질 공연 역시 셋리스트가 없고, 이날 곡 순서와도 다르다. 미리 예습보다는 그날 느끼는 감정을 가득 채우도록 비우는 것이 우선이다. 부산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했던 그는 20일 출연한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한 청취자가 겨울에는 경찰이 금한다고 알리자, 아일랜드에서는 겨울에도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다며 진심으로 섭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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