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만에 日 무대 돌아온 백제 춤꾼

입력 : 2015.11.16 03:00

[한국인 최초 노(能)악당 공연, 국수호 '미마지의 무악']

일본에 춤과 노래 전수했던 백제인 '미마지' 모티브 삼아
관객 "한 편의 고전극 보는듯"

장구를 목에 건 국수호(67)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객석을 향해 몸을 숙이자, 70분 동안 숨죽이고 앉아 있던 일본 관객들이 일제히 큰 박수를 쳤다. 박수는 악사들이 악기를 챙겨 무대를 나갈 때까지 10분 가까이 계속됐다.

지난 12일 저녁, 일본 도쿄 시부야(澁谷)구의 국립노악당(國立能樂堂)에서 열린 디딤무용단의 '미마지(味摩之)의 무악(舞樂)' 공연이었다. 가무극인 노(能)의 명인들만 오를 수 있는 일본 전통예술의 중심 국립노악당에서 한국 무용가의 공연이 열린 것은 1983년 건립 이래 처음이다.


 

지난 12일 저녁 일본 도쿄 시부야구 국립노(能)악당에서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미마지의 무악’을 공연하고 있다. 오른쪽 여성 무용수들의 한복은 다카마쓰(高松) 고분 벽화를 재현한 것이다. /국수호 디딤무용단 제공
지난 12일 저녁 일본 도쿄 시부야구 국립노(能)악당에서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미마지의 무악’을 공연하고 있다. 오른쪽 여성 무용수들의 한복은 다카마쓰(高松) 고분 벽화를 재현한 것이다. /국수호 디딤무용단 제공

국수호 감독은 "사쿠라마 우진(櫻間右陣·54) 선생이 노악당 측을 설득한 끝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이 열릴 수 있었다"고 했다. 노 예능의 대가 사쿠라마 가문의 21대 당주(當主)인 우진은 일본의 노 인간문화재다. 그는 "1400년 전 백제 사람 미마지가 일본에 전수한 무악이 노의 기원이 됐다는 설이 있다"며 "이곳에서 국수호 선생의 이 작품을 공연하는 것은 양국 문화 교류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서기 612년 백제 무왕의 명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춤과 노래를 가르친 미마지를 모티브로 국수호 감독이 안무한 창작무용이다. 40년 전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국 감독이 미마지 역, 사쿠라마가 미마지를 후원한 쇼토쿠(聖德) 왕자 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 미마지가 사쿠라이(櫻井) 언덕에 토무대(土舞臺)를 만들어 무악을 창작하고 자유로운 영혼처럼 춤추며 비상한다는 줄거리의 이 무용극은, 목조 전각과 회랑의 모습으로 지어진 전아(典雅)한 노 극장의 무대와 꼭 맞춘 듯 어울렸다.

강상구가 작곡한 비파와 30현 가야금의 꿈결같은 음률 속에서 정준용·최태헌 등 남성 무용수들은 호방한 비조무(飛鳥舞)를 췄고, 공후 가락에 몸을 실은 이민주·백아람 등 여성 무용수들은 신비롭고 나긋한 자태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국 감독의 몸짓에는 석굴암 금강역사의 무게감과 무용총 벽화의 유려함이 깃들어 있었다. 백제 무악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우방악(右方樂)과 가구라(神樂)를 참고했다는 춤사위엔 승무, 학춤, 한량무를 연상케 하는 요소도 눈에 띄었다.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요코하마에서 온 관객 아시자와 미사코씨는 "상체를 그대로 두고 다리만 움직이는 춤 동작이 대단히 매혹적이었다"고 했다. 아모리 나오코씨는 "미마지란 인물을 통해 백제로부터 이어진 일본의 문화 루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 뒤풀이에 참석해 무용수들과 사진을 찍은 게오르기오스 스틸리아노풀로스 주일 그리스 공사는 "그리스 고전극을 보는 것 같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수호 감독은 "이번 공연은 백제 멸망 후 사라진 옛 한국춤의 유산을 찾는 큰 작업의 일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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