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상상력과 지식, 무용을 변화시키죠"

입력 : 2015.11.02 00:25

[세계적 무용단 '아크람 칸 컴퍼니' 제작자 파룩 초드리 내한]
"우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 실수조차 안무에 반영하죠"

낯선 무언가를 접할 때마다 파룩 초드리는 버릇처럼 “나는 잘 모른다”를 되뇐다고 했다. “겸손한 자세를 갖출 수 있어서”다. /박상훈 기자
인종차별이 팽배한 60년대 런던에서 파키스탄 소년은 가만히 있어도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어린 마음이 미움과 분노로 차올랐을 때,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한편의 무용을 봤다. 몸집이 우람했던 흑인 남자 무용수는 시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줬다. '그래, 저 사람처럼 돼야겠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인 무용단 중 하나인 '아크람 칸 컴퍼니'를 만든 제작자 파룩 초드리(Chaudhry·55)는 "전문 무용수가 되겠다며 학교까지 그만둔 나를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며 말렸지만 춤을 멈출 순 없었다"고 했다.

초드리는 방글라데시 출신 무용수 아크람 칸을 오늘날 이름난 안무가로 거듭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주인공이다. 1999년 39세에 무대에서 은퇴한 이후 자신이 살고 있던 런던의 아파트를 팔아 자신이 아닌 칸의 이름을 단 무용단을 만들었다. 재능 있는 무용수였던 칸은 초드리의 날개를 달고 인도 전통무용 '카탁'과 현대무용을 응축한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초드리도 제작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 외교부가 선정한 세계적인 문화 사업가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 국립발레단의 프로듀서로도 발탁됐다.

한국 무용단체들에 문화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최근 서울을 찾은 초드리는 "아크람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며 웃었다. "소유에 흥미없어요. 당시 집을 팔면서 아내와 한 살 된 딸까지 단칸방으로 옮겨야 했지만 곧 좋아질 거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 믿었죠."

여섯 살 때 영국으로 이민 왔다. 파키스탄에서 대학교수였던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급전직하한 처지를 힘겨워했다. 부유하게 자란 어머니도 불행하긴 매한가지였다. "부모님을 마음속 깊이 원망했어요. 머리가 헝클어지고 땀범벅이 될 때까지 춤을 추면서 미움을 겨우 떨쳐낼 수 있었죠. 슬픔, 원망, 후회는 시간낭비일 뿐 스스로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는 망가져버릴 거라고 끊임없이 되뇌었어요."

1999년 7월 런던에서 만난 칸은 독특한 친구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동작을 언어로 만들어냈다. 남성·여성, 동양·서양, 고전·현대를 나누지 않았고 보고 느낀 그대로 자신의 춤에 녹여넣었다.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서양이 최고라는 생각은 얼토당토않다는 거죠. 아시아에서 나오는 수많은 상상력과 지식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오히려 큰 역할을 한다고 느꼈는데 아크람도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크람 칸 컴퍼니의 규칙은 간단하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크고 대담하게 생각하고, 낯선 것을 탐구하며 타협하지 않는다'이다. '그건 불가능해' '바꿀 수 없어'란 말은 사절이다. 초드리는 말했다. "저와 아크람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 실수조차 안무에 반영하죠.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종과 작업하지만 그중에서도 저희 스타일은 아시아와 가장 닮았어요. 융합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모든 걸 몸이 알아서 표현하게끔 움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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