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올해 주역은 '생황'…37관

입력 : 2015.10.27 15:57
중국의 세계적인 생황연주자 우웨이(46)가 갓난 아기를 안듯 생황을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립교향악단 4층 체임버 연습실에서 연인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듯 조심스레 생황의 관에 바람을 불어넣자 37개 관에서 묘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74)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증기기관을 압축한 듯한 생황에서 뿜어져나오는 음색은 신비로웠다.

우웨이가 세계 곳곳에서 연주한 생황 협주곡 '슈'을 만든 서울시향의 진은숙(54) 상임작곡가는 "생황의 소리는 신비롭고 연주자의 기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생황은 3000년 역사를 지닌 중국 전통 악기다. 영어로는 '마우스 오르간(mouth organ)'이라고 한다. 입으로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낸다. 한국에는 삼국시대 이후 전파됐다. 통일신라 시대의 국보인 성덕대왕 신종과 상원사 동종에 이를 연주하는 천인(天人)의 모습이 새겨졌다. 이는 세종문화회관 외벽에 크게 부조됐다. 조선시대의 화가인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서도 생황을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유 리드(free reed) 악기다. 탄력성이 풍부한 금속 조각, 또는 대나무 등을 평판 위에 고정해 구멍 안쪽으로 바람을 내보낸다. 리드의 진동 만으로 일정한 고른음을 낸다. 하모니카, 아코디언, 오르간, 하모늄 등이 자유리드 악기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생황이 17개 관을 가진 것과 달리 우웨이는 개량된 서양식 키(key)를 가진 37관 생황으로 연주한다. 30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11월5일 오후 7시30분 세종체임버홀에서 펼쳐지는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 III&IV'는 37관 생황의 매력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무대다.

30일 '아르스 노바 III: 세기의 소리'에서는 핀란드 작곡가 유카 티엔수(67)의 신작 생황 협주곡 '터톤(Teoton)'을 초연한다. 티엔수가 우웨이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협연 역시 우웨이가 맡는다.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공동위촉(Co-Commission) 제도를 도입한 서울시향이 주도하고 노르웨이방송교향악단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암스테르담 NTR자터다흐마티네·대만국립교향악단이 함께 티엔수에게 위촉했다.

진은숙은 "우웨이 스스로 개발한 생황은 서른 일곱개 대나무관으로 굉장히 많은 음들을 동시에 연주할 수 있어 미묘한 조화를 이룬 하모니를 만들 수 있다"며 "서양에서는 이 악기를 사용해서 곡을 많이 만들지 않는데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작곡가가 많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악기의 무게는 4㎏다. 양손으로 악기의 양쪽을 붙잡고 균형을 맞춘 뒤 여러 개 구멍을 막아 하모니를 만들어 연주한다. 이 악기를 사용한 곡을 만들 때 힘든 점은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며 구멍을 막아 소리를 내다 보니 오른손과 왼손의 균형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한쪽 손만 쓰게 되면 악기가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악기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곡을 써야 한다."

우웨이는 "중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생황이 있는데 한 종류는 전통에 기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현대적인 것"이라며 "오늘 연주한 악기는 개발을 해서 음이 더 많아지기는 했지만 전통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개량한 악기"라고 밝혔다. 악기의 맨 밑에는 따듯한 물을 넣는다고 귀띔했다. "수증기가 스팀 역을 해서 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항상 보온병에 물을 준비해서 다닌다."

본래 중국 근대의 현악기인 얼후를 연주했다는 우웨이가 생황을 시작한 건 15세 때. "당시에도 생황이 중국에서는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더 퍼졌다"며 "2~3주 전에는 생황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가야금, 거문고, 단소, 대금 등과 달리 생황을 연주하는 연주자를 쉽게 찾을 수 없다. 11월5일 '아르스 노바 IV: 세기의 소리'에서 서울시향 작곡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박정규(34)의 신작 '인투(Into…)'에 주목하는 이유다.

서울시향이 파리가을축제와 공동 위촉한 두 개의 앙상블과 생황을 위한 작품이다.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가을축제'에서 암스테르담 뉴 앙상블이 초연해 호평 받았다. 피리에 기반한 전통음악 연주자 가민(39·강효선)이 생황 협연을 맡는다. 그녀도 한국의 전통 생황이 아닌 우웨이이 37관 생황을 연주한다.

'아르스 노바'를 통해 앞으로 젊은 작곡가에게 곡 위촉을 계속할 거라는 진은숙은 10년을 맞는 이 프로그램에서 생황이 첫 비서양 악기라고 알렸다. "앞으로 한국의 전통 악기를 솔로로 사용하는 등 폭을 넓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규는 "본래 국악기는 음에 한계가 있어 애로사항이 있는데 우웨이의 생황은 37관이라 서양의 악기처럼 반음계를 사용할 수 있어 연주에 제한이 없다"며 "'… 안으로'라는 뜻의 곡 제목 '인투'처럼 생황의 관에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곡이 시작된다. 생황이 코드나 음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이 이뤄지는 결과물에서 아이디어를 잡아 곡을 썼다"고 설명했다.

가민은 "한국의 생황은 17개관인데 우웨이의 생황은 37개관이라 악기의 무게도 더 무거워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힘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생황은 대나무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 소리를 내는데 개량된 이 생황에서는 모든 관에 키가 달려 있어 손가락으로 조절을 할 수 있어 현대적인 테크닉이 가능하다. 나름대로 해석하고 연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황은 아직 한국에 낯선 악기다. "대학에서도 생황 전공이 없다"며 "나는 피리를 전공한 연주자다. 피리와 생황을 겸해서 연주를 하고 있다"고 알렸다.

진은숙은 그럼에도 거듭 생황의 매력을 찬양했다. "윤이상 선생님이 대표곡 '예악'(아악 기법을 오케스트라에 접목한 곡)을 만들 때 악기를 조합하며 생황 소리를 상상하고 만들었다고 전해들었다"며 "그 분은 1917년 통영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여기저기서 생황 소리가 많이 들렸다고 하더라. 생황을 공부하면서 전통악기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소리가 항상 유동적으로 움직이는데 생황은 플랫(평탄)하지 않나? 내가 플랫한 소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웃음) 우리나라 음악과는 다른 성격의 음색이다. 생황 협주곡을 쓰고 이 악기가 너무 좋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도 이 악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한편, 동시대 경향을 소개하는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인 진은숙이 기획, 탄탄한 프로그램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동안 연주한 곡을 종합해서 크게 음악회도 열고 이를 기록하는 책도 준비 중이다.

10주년을 앞두고 여는 이번 무대의 포디엄에는 BBC 스코티시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인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 일란 볼코프(39)가 오른다.

앞서 언급한 생황 협주곡 외에 라벨의 '발레 잔의 부채를 위한 팡파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베베른의 '여섯 개의 오케스트라 소품', 아시아 초연하는 작곡가 힐보리의 '열한 개의 문'(30일)을 들려준다.

리게티의 '여섯 개의 바가텔', 티엔수의 2010년 작 '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도허티의 '시나트라 섀그',스트라빈스키의 '병사 이야기' 모음곡(11월5일)도 선보인다.

양일 공연 모두 시작 40분 전부터 해설 프로그램인 '프리 콘서트 렉처'가 진행된다. 현대 음악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반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진은숙 상임작곡가가 해설자로 나선다.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 해설을 맡고 있는 하바쿡 트라버의 프로그램 노트도 만나볼 수 있다. 1만~5만원. 서울시향. 1588-1210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젊은 음악가를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2006년 첫 번째 아르스 노바 공연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작곡 마스터클래스'에서 진은숙 상임작곡가가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개인지도 한다. 28일 오후 3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전년도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작곡가 중 우수작품을 선정해 '우수학생 작품 리허설'(리딩세션)을 한다. 신진 작곡가 나석주과 박명훈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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