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 그 숙명적인 갈등에 대하여

입력 : 2015.09.18 00:52

[연극 리뷰] 아버지와 아들

얽히고설킨 세대 간 충돌 그려… 절절한 父情 연기한 오영수
윤정섭, 폭풍 같은 기백 보여

"토론이나 새벽에 하는 모의 전투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지. …우린 지금 할퀴고 상처 내고 물어뜯고 침을 뱉는 적대적인 시대에 살고 있어."(연극 '아버지와 아들' 중 바자로프의 대사)

19세기 러시아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 소설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父子) 세대의 숙명적인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이 나온 시기는 설익은 '혁명'의 기운이 넘쳐났으되 제정(帝政)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던 1862년 러시아. 이미 이뤄 놓은 질서를 지키고자 예절과 이성(理性)을 앞세우는 윗세대와 모든 걸 뿌리부터 부정하고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아랫세대가 충돌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오영수(바실리), 이명행(아르카디), 윤정섭(바자로프), 박혜진(아리나). /국립극단 제공
‘아버지와 아들’의 오영수(바실리), 이명행(아르카디), 윤정섭(바자로프), 박혜진(아리나). /국립극단 제공

아일랜드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86)은 이 원작을 안톤 체호프풍으로 바꿔 대본을 썼고, 이 작품을 연출가 이성열이 무대에 올렸다. 국립극단 연극 '아버지와 아들'의 등장인물은 체호프 극처럼 각자 사연을 지닌 채 한곳에 모여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떠는데, 관객이 보기엔 그 모두가 하나씩 나사가 풀린 듯한 캐릭터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지주 니콜라이(유연수)는 새 시대의 경영 방식이 뭔지 통 모르는 촌부이고, 그 형인 이상적 자유주의자 파벨(남명렬)은 생업도 갖지 않은 채 독서로 소일하는 선비다. 니콜라이의 아들 아르카디(이명행)가 귀족이라는 처지와 걸맞지 않게 새 사상에 동조하려 하는 철부지 도련님이라면, 그 친구인 주인공 바자로프(윤정섭)는 세상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걸 변혁하려는 '운동권' 학생이다. 여기에 니콜라이의 젊은 정부(情婦) 페니치카(최원정)와 매력적인 과부 안나(김호정)가 등장해 인물들의 관계는 애증으로 얽히고설킨다.

프리엘은 '갈등'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는 달리 '화해' 쪽에 무게를 뒀는데, 체호프의 '플라토노프'나 '벚꽃동산'처럼 꿈이 사라지는 상황의 공허하면서도 떠들썩한 파티가 극 후반 길게 이어진다. '결국 모든 반목(反目)이란 부질없는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셈인데, 그 바탕엔 세대와 계층, 성별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부둥켜안고 위로하며 살아가야 할 인생이라는 깨달음이 있다. 쟁쟁한 배우들 속에서도 거칠고 폭풍 같은 기백을 보인 윤정섭, 그 아버지로 나와 절절한 부정(父情)을 보여준 오영수의 연기는 상찬할 만했다.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연 시간 180분,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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