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가 사라졌다… 실험적인 시도만 남긴 채

입력 : 2015.09.17 01:13

[공연 리뷰] 창극 '적벽가'

도망가는 조조, '꿈'으로 설정… 참신했으나 이야기는 뚝뚝 끊겨
관우가 조조 살려준 대목도 삭제, 작품 관통하는 핵심 사라져버려

창극 ‘적벽가’ 중 공명이 달아나는 장면. 앞쪽 가운데 갓 쓴 이가 송순섭 명창이다. /국립극장 제공

"우지 마라, 각 새들아. 너무나 우지를 말어라. …죽은 원귀(寃鬼)가 나를 원망하여서 우는구나."

송순섭 명창의 창(唱)이 장강대하처럼 이어지다 곳곳에서 탁음(濁音)의 여울에 울컥 걸렸다. 판소리의 힘을 보여준 이 마지막 장면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부르는 판소리 '적벽가'를 듣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국립창극단의 창극 '적벽가'는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이 연출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삼국지연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 부분을 다룬 이 작품은 스케일이 크고 창이 어려워 국립창극단도 1985년, 2003년, 2009년 단 세 번만 무대에 올렸을 정도다. 영웅담 뒤편에 스러져간 망자(亡者)를 중심의 두겠다는 설정도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지난 15일 개막한 이 작품은 '적벽가'라기보다는 '적벽가와 비슷한 신작 창극'처럼 보였다.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조가 도망가는 뒷부분을 '조조의 꿈'으로 설정해 전쟁 장면 앞으로 뺀 것은 참신한 시도였으나 장면이 끊기고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장판파 전투에서 장비가 호통치는 장면은 아무런 맥락 없이 공명이 오나라에서 피신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조자룡이 활을 쏘는 그 유명한 대목 다음에선 추격에 실패한 오나라 장수 서성과 정봉이 난데없이 수군을 이끌고 웅장하게 진군한다. 뮤지컬처럼 1막 끝을 인상적으로 꾸미기 위한 무리수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적벽가' 중 가장 중요한 장면, 관우가 조조를 너그럽게 살려 주는 마지막 대목을 삭제해버린 데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인 의(義)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림으로써 도원결의와 삼고초려, 장판파, 적벽대전에 이르는 모든 에피소드가 의미를 잃고 흩어져 버렸다. 지나치게 스타일에 치우친 연출이 작품의 핵심을 잡아먹은 셈이다. 최근 일련의 새로운 실험으로 관객 동원에 성공을 거둔 국립창극단은 이제 창극 본연의 정신도 되새길 때가 된 것 같다.

▷1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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