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정영두, 발레스타 김지영 괴롭힌 이유…무용 '푸가'

입력 : 2015.09.15 09:47
14일 오후 역삼동 LG아트센터 리허설룸에서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g단조, BWV 100 중 2악장 푸가의 선율에 맞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의 몸짓은 낯설면서 새로웠다.

스타 안무가 정영두가 LG아트센터(대표 정창훈)와 손잡고 선보이는 현대 무용 프로젝트 '푸가' 출연을 앞둔 그녀는 무게 중심이 위와 아래에 각각 쏠려 있는 클래식 발레와 현대 무용, 그 사이의 중심을 찾는 듯했다. 평소 내뻗는 다리와 팔의 방향도 달랐다.

정영두는 이날 열린 '푸가' 제작발표회에서 "김지영 씨를 생각하지 않고 음악 자체만 듣고 움직임을 만들어 몸에 입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있다"고 웃었다.

정영두가 김지영을 비롯해 엄재용·윤전일 등 스타무용가들과 손 잡고 현대 무용 프로젝트 '푸가'를 선보인다.

다성음악인 '푸가(fugue)'를 테마로 한다. 푸가는 하나의 주제가 성부 또는 악기에 지속적으로 모방반복되면서 특정한 법칙이 만들어지는 악곡이다. 반복과 변화가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커다란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바흐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말러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음악가들이 발전시키고 재발견했다. 정영두 안무가는 이번 공연에서 '푸가' 음악에서 받은 영감과 이미지로 만든 움직임을 스타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확장시킨다. 특히 푸가 형식의 음악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바흐에 집중한다. 14세기에 시작돼 17세기에 꽃을 피운 푸가는 사실상 바흐에 의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정영두는 푸가를 소재로 공연을 만든 이유에 대해 "LG아트센터가 제안을 했는데 공부할 것이 많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여러 작곡가가 푸가 형식으로 만든 곡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바흐만 제대로 해보자라고 판단했죠. 현대무용과 발레 사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안무할 때는 (장르를) 설정하지 않았어요. 우선 음악이 잘 보이고, 음악 위에서 몸이 잘 보이는 그 두 가지에 중점을 뒀죠."

'푸가'는 일본을 중심으로 미국, 유럽 무대에서 활동해 온 정영두 안무가의 3년만의 국내 복귀작이다. '제 7의 인간', '먼저 생각하는 자 - 프로메테우스의 불' 등 지금까지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던 그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메시지보다 '푸가'라는 음악 안에 담긴 균형과 질서의 미학을 우선시한다.

정영두는 "그간 메시지가 없는 작업도 많았다"고 웃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특히 메시지가 없는 게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 개인적인 고민이 늘 있었어요. 이념이나 이슈가 많아 작품의 메시지가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그것을 벗어나 개개인의 시간을 담아내는, 시각적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게 푸가와 비슷해요."

그간 현악 4중주·5중주·6중주,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등으로 작업했다는 그는 푸가는 처음이지만 듣고는 귀에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클래식한 움직임 말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무용수들 캐스팅했다고 전했다.

이에 발레에 기반을 뒀으나 새로운 도전에 거리낌이 없는 김지영·엄재용·윤전일이 캐스팅됐고 국립현대무용단 출신의 무용수 최용승,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 댄스 씨어터의 핵심 무용수인 김지혜와 하미라가 가세했다. 애초 함께 하기로 한 현대무용가 최수진이 개인 사정상 빠지고 그녀를 대신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약한 도황주가 합류, 총 무용수 7명이 참여한다.

정영두는 "음악과 잘 어울리는 움직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이 새로운 것을 해서 힘들 테지만 참아내고 이겨낸다면 음악과 잘 어울리는 무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발레 위주의 엄재용, 김지영, 윤전일 씨는 새 움직임을, 현대무용에 기반한 친구들은 평소 자기 표현을 하는 것에 주력 하는데 일정한 규칙 안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해요."

무엇보다 푸가라는 단순한 형식 안에서 아름다운 안무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했다. "곡의 구조를 찾아가다 보면 그냥 춤으로 옮기기만 해도 리듬의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생길 때가 있어요. 곡 자체가 비슷하더라라도 다양하게 시각화가 될 겁니다. 관객들은 '비슷한 곡인데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네'라고 느끼는 재미가 있죠. 4~5명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푸가가 서로의 색깔을 주장하면서도 앙상블을 이루는 곡이라는 점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월부터 '푸가' 작업을 해왔다는 정영두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보면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고 웃었다. "무용수들이 어렵다고 하지만 땀 흘려서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하는 만큼 새로운 앙상블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발레스타로 통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엄재용의 참여가 우선 눈에 띈다. 국내 양대 발레단을 대표하는 두 스타가 함께 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발레의 상징인 토슈즈를 벗고 현대적인 움직임을 선보인다.

김지영은 "공주 옷만 입다가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 기대가 된다"고 웃었다. "억압된 몸짓 안에서 자유로움을 표현을 해야 한다"며 "발레는 아니에요. 전혀 다른 장르"라고 설명했다.

"보기에는 안 힘들어 보일 수 있는데 발레하는 사람으로서는 힘든 동작들이죠. 예를 들어 다리를 항상 바깥 방향으로 쓰는데 안쪽 방향으로 쓴다든지 그런 것이 힘들고, 몸의 흐름 같은 것도 쓰는 방향들이 있는데 거꾸로 쓰고 있어요."

그는 그동안 정영두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의식과 호기심 때문이에요. 새로운 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죠. 발레단에 들어가서 클래식만 한 것은 아니에요. 모던 발레도 했고, 혼자서는 컨템포러리(현대) 작업도 했죠. 근데 컨템포러리에서 많은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이죠. 안무가랑 무용수 사이가 매번 좋지 만은 않아요. 항상 즐겁게 작업한다는 건 거짓이죠(웃음). 그렇게 힘들지만, 포기하지는 말자는 생각이에요. 그러면서 익숙해져 가는 거죠."

정영두와 역시 처음 작업이라는 엄재용도 "16년 동안 발레단에만 있다 보니 새로운 것에 목말랐다"고 했다. "클래식을 할 때처럼 닫혀 있지 않고 자유로워서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새로운 도전이죠."

LG아트센터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하는 작품이다. 10월 9~1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뒤 같은 달 23~2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3만~6만원. 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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