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춤춘다, 그가 펼친 '논' 위에서

입력 : 2015.09.10 03:00   |   수정 : 2015.09.10 21:35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 대만 안무가 린화이민]

계절의 변화·생명의 순환 담은 현대무용 'Rice' 11·12일 공연
"츠상 지역의 아름다운 산·들과 농부들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

하늘, 흙, 물, 햇빛, 바람을 골고루 빨아들인 볍씨들은 알차게 여물고, 추수가 끝난 대지는 이듬해 경작을 위해 농부들이 일부러 지른 불로 뜨겁게 타오른다. 23명의 무용수가 논을 배경으로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순환을 한 편의 무용으로 토해낸 'Rice(쌀)'는 대만 출신 안무가 린화이민(林懷民·68·사진)이 2013년 만든 현대무용 작품. 아시아인으로는 드물게 국제적으로 이름난 안무가의 위치에 오른 린이 11~12일 LG아트센터에서 이 작품을 선보인다. 1973년 중국어권 최초의 현대무용단으로 그가 창단한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이 무대에 오른다.

서예의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춤에 접목한 1991년작 '행초(行草)'로 '사람의 몸을 붓처럼 쓴다'는 평을 받았던 린은 이번엔 한정된 무대를 끝없이 펼쳐진 대지로 넓혀 그 속을 채우고 때론 비우는 자연의 에너지를 담아낸다. 중심엔 아시아인들에게 먹을거리를 넘어 문화이자 삶인 곡식 '쌀'이 있다.

"2011년 대만 동쪽 해변에 있는 츠상(池上) 지역에 갔어요. 유기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어 대만 최고의 쌀을 내놓는 지역이죠." 9일 서울 역삼동에서 만난 린은 "그곳의 산과 들, 대지를 사랑하는 농부들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츠상 주민들을 상대로 열었던 ‘Rice’ 시연회 장면. 논에 불 놓는 모습을 역동적인 춤사위로 그려냈다. /LG아트센터 제공
츠상 주민들을 상대로 열었던 ‘Rice’ 시연회 장면. 논에 불 놓는 모습을 역동적인 춤사위로 그려냈다. /LG아트센터 제공

의사인 할아버지와 장개석 정부의 관료를 지낸 아버지, 고전 음악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린은 글을 잘 썼다. 22세 때인 1969년 발표한 소설 '매미'는 중화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춤이 좋았다. 1969년 저널리즘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가서는 뉴욕에 있는 마사 그레이엄 현대무용센터에서 춤을 익혔다.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 이름은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중국 최고(最古) 춤 '운문(雲門)'에서 따왔다. 중국 춤 전통에 현대무용을 더해 그들 사이의 '공통 언어'를 찾겠다는 의지다. 전통극 경극(京劇)을 익힌 그는 1974년 한국에서 김천흥으로부터 궁중무용을, 한영숙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일본에선 가부키, 노, 분라쿠 같은 전통 예능에 전통춤 부토까지 익혔다. 1999년 무용 전문지 '댄스 유럽'은 지리 킬리안, 피나 바우쉬 등 세계 최고 안무가들과 함께 그를 '20세기의 위대한 안무가'로 뽑았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그의 춤엔 줄거리가 없다. 무용수의 몸짓만으로 진흙에 고인 물의 떨림, 바람에 흔들리는 벼의 물결, 익어가는 알곡들을 그려낸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삶의 아름다움'이다. "어려웠어요. 벼들의 짝짓기를 무용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쌀을 수확할 무렵 그는 무용단과 함께 마을로 가서 일손을 도왔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 풍광은 2년간 츠상에 머물며 바뀌는 계절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비디오 아티스트 창 하오얀의 작품이다. 하카(客家)족의 민요에서부터 마리아 칼라스의 오페라 아리아, 말러 교향곡까지 음악을 다채롭게 쓴다.

▷Rice(쌀)=11일 오후 8시·12일 오후 3시 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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