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보 서울시극단장, 고연옥 작가의 '나는 형제다' 무대에

입력 : 2015.08.21 09:55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한 산물"
서울시극단장으로 부임 후 첫 작품
연극 '사회의 기둥들'과 '프로즌', 뮤지컬 '신과 함께 - 저승편' 스타연출가 김광보가 서울시극단(단장 김광보) 단장으로서 첫 작품을 정했다.

연극 '나는 형제다'다. 2013년 보스톤 마라톤대회 폭탄 테러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내 이름은 강' '내 심장을 쏴라' 등 김 단장과 호흡을 맞춰온 극작가 고연옥의 새 희곡이다.

두 콤비는 2001년 '인류 최초의 키스'로 처음 호흡을 맞춘 뒤 총 17편을 함께 작업했다.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는 무거운 주제에도 연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협업해 신작을 내놓는 건 4년 만이다. 지난 6월1일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임명된 김광보 연출은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에서 열린 '나는 형제다' 제작발표회에서 부임 후 첫 작품으로 이 연극을 택한 이유에 대해 "서울시극단 단체장이자 연출자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산물"이라고 밝혔다.

"사실 부담스런 자리를 맡게 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 부담스런 자리에서 어떻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흔히들 단체장으로 부임하면 '이렇게 바꾸겠다' '새롭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임기 3년을 계획하면서 정기공연 6편 연출은 내가 다 하겠다고 했다. 이후 나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가가 누구일까 고민했는데 역시 고연옥이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품이 고연옥 작가의 작품이다."

총 21개 장으로 이뤄진 '나는 형제다'는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 온 두 형제의 성장과 실패를 통해 약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그린다.

실화의 형제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점에서 압력솥을 이용해 만든 폭탄 2개를 터뜨려 3명을 숨지게 하고 260명을 다치게 했다. 한국사회로 옮겨온 '나는 형제다'에 등장하는 형제는 마라톤 대회가 아닌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범행의 장소로 택한다.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복수를 시도하는 심정으로 영화관에 폭탄을 설치하고, 지금껏 자신들이 테러리스트가 돼 가는 과정 전체를 지켜봤던 사람들을 향해 폭탄을 터트린다. 이를 통해 '테러리즘'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우리 모두와 연결돼 있음을 자각케 한다.

고연옥 작가는 "미국에서 테러를 일으킨 형제는 러시아 체첸공화국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 가족이기는 했지만 미국 사회에서 자랐다"며 "형은 운동선수였고 동생은 의대생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른 실패를 했다. 이런 부분이 젊은이들이 가진 분노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다. 실화의 형제가 터뜨린 압력솥 폭탄 안 금속들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지 이 형제들은 알았다. 왜 두 사람 중 아무도 멈추지 않고 서로 말리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서로 형제라 부른다. 형제를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전작들에서 폭력에 대해 조명해온 고연옥 작가는 테러는 '현대 폭력의 가장 무서운 형태'라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폭탄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테러에 노출돼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무시하고 배척하고 절대로 같이 살 수 없다며 악마화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결국 약자를 고립시킨다. 약자들이 서로 더 미워하게 된다. 작품에서 형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세상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리고 순진해 보일 수 있지만 더 늦기 전에 회복해야 할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즉 테러가 우리와 먼 문제가 아닌 근거리에 있는 폭력의 문제라는 판단이다. "보스턴 사건을 접하고 바로 썼다. 형제라는 관계에서 나오는 원형성을 찾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신이 어떻게 인간을 만나게 되고 어떻게 길들이고 어떤 상황에 내모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실화의 테러 장소는 마라톤 대회인데 '나는 형제다'의 배경은 영화관이다. "마라톤 대회에는 누가 나올지 모른다. 불특정 다수가 나오는 셈이다.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여가를 즐기는 곳이다. 형제들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는 과정을 에피소드식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단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하는 형식이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보고 있는 공간으로서 영화관을 생각했다."

일단 줄거리와 인물 소개를 보면 형과 동생의 이름이 따로 표시되지 않았다. 최근 고연옥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하지 경우가 왕왕 있다. 인물들에게서 보편성을 주기 위한 장치로도 보인다.

고연옥 작가는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을 많이 쓴다"며 "그래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최근 작품에도 인물들의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는 형제다'는 현대적인 이야기라 중간에 이름이 나오기는 하지만 "특정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였으면 했다"고 바랐다. 아울러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연극적 재미가 살아있는 작품이라며 무엇보다 "우리 얼굴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광보 연출도 "'나는 형제다'의 형은 세상의 모든 형들과 소외된 인간을 대변한다"며 "결국 형과 동생은 세상의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김광보 연출은 '여우인간' 등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오기 전 이 단체와 총 4편의 작품을 했다. 객원 연출가로서 보는 서울시극단과 단장으로서 보는 서울시극단과 차이점이 있느냐는 물음에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며 "서울시극단을 새롭게 만들겠다고 '말'하지 않겠다. 장점을 녹여내 열심히 해서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엠. 버터플라이' '사회의 기둥들'에서 김광보 연출과 호흡을 맞춰온 이승주가 객원배우 자격으로 형을 연기한다. 서울시극단 연수단원인 장석환이 동생을 맡았다. 이창직, 강신구, 주성환, 김신기, 최나라 등 서울시극단 단원들을 중심으로 배우들을 꾸렸다.

9월 4~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영상 정재진, 무대 황수연, 조명 이동진, 음악 장한솔, 의상 이명아, 안무 금배섭 등 최정급 제작팀이 합류한다. 2만~5만원. 02-399-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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