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계 '프리미어 리그'… 뮌헨의 별들과 함께 빛난 韓테너

입력 : 2015.08.06 00:16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돈 카를로' 주역 데뷔한 테너 김재형]

테너 라몬 바르가스 대신 서
처음에는 밀리는 듯했으나 3막선 드라마틱한 목소리 발휘

르네 파페, 쓸쓸한 내면 실감나
하르테로스, 기품과 깊이 갖춰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스타 성악가들이 총출동하는 '오페라의 프리미어 리그'다. 전설적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안나 네트렙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베이스 르네 파페 등 쟁쟁한 별들이 매일같이 뮌헨 도심 한복판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에 선다. 잘츠부르크와 함께 여름휴가철 유럽에서 가장 수준 높은 오페라를 만날 수 있는 이 공연장에 지난달 30일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극장 홈페이지에는 멕시코 출신 세계적 테너 라몬 바르가스(55)가 주역 돈 카를로를 부른다고 썼는데, 프로그램엔 테너 김재형(42)의 영문 이름(Alfred Kim)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바르가스가 공연 직전 취소 통보를 했던 것.

지난주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돈 카를로’주역으로 데뷔한 테너 김재형. 왼쪽은 이 극장 대표 소프라노 아냐 하르테로스. /ⓒWilfried Hosl
지난주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돈 카를로’주역으로 데뷔한 테너 김재형. 왼쪽은 이 극장 대표 소프라노 아냐 하르테로스. /ⓒWilfried Hosl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극장이 1년간 올린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오페라만 골라 최고의 캐스팅으로 한 달 넘게 올리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6월 24일~7월 31일), 그것도 절정인 마지막 주에 오른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전 5막)였다. 김재형의 상대 역은 베이스 르네 파페(필리포 2세), 바이에른 극장의 대표 소프라노 아냐 하르테로스(엘리자베타 왕비), 러시아 출신 메조소프라노 안나 스미르노바(에볼리 공녀) 등 오페라계의 빛나는 별들이다. 이들과 함께 바이에른 극장 주역으로 데뷔한 것.

16세기 스페인 궁정 실화를 바탕으로 부자(父子)간의 갈등과 우정, 사랑을 담은 '돈 카를로'는 테너에겐 "잘해봤자 본전"인 작품이다. 아버지에게 덤벼들고, 연인에게 분별없이 열정을 폭발하는 덜떨어진 인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 필리포 2세와 연인이자 어머니인 엘리자베타 왕비, 친구이자 신하인 로드리고, 왕의 정부(情婦)로 나오는 에볼리가 더 설득력 있고, 뛰어난 아리아를 부르기 때문에 사방이 경쟁자인 셈이다.

시작은 약간 불안했다. 변변한 서곡이나 오케스트라 반주도 없이 김재형은 노래를 시작했다. 프랑스 퐁텐블로 숲에서 엘리자베타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은 아슬아슬하게 들렸다. 2막에서 로드리고 역 이탈리아 신예 바리톤 시모네 피아졸라와 우정의 이중창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를 부를 땐, 소리가 밀리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발휘했다. 2막 후반 엘리자베타와 부르는 2중창은 절박하게 들렸고, 5막 피날레의 이별의 2중창도 애절했다. 필리포 2세와 맞서는 3막 후반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드라마틱한 목소리였다. 큰 목소리로 밀어붙이기보다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왼쪽 사진)지난 7월 31일 뮌헨 막스 요제프 광장에서 열린‘모두를 위한 오페라’무료 행사.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마지막 날인 이날 극장에서 열린 푸치니‘마농 레스코’를 생중계했다. (오른쪽 사진)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별들의 경연장이다. 차이콥스키‘예프게니 오네긴’주역 타티아나로 나선 안나 네트렙코. /ⓒWilfried Hosl
(왼쪽 사진)지난 7월 31일 뮌헨 막스 요제프 광장에서 열린‘모두를 위한 오페라’무료 행사.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마지막 날인 이날 극장에서 열린 푸치니‘마농 레스코’를 생중계했다. (오른쪽 사진)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별들의 경연장이다. 차이콥스키‘예프게니 오네긴’주역 타티아나로 나선 안나 네트렙코. /ⓒWilfried Hosl
르네 파페는 뛰어난 베이스였다. 침실에 홀로 누워 부르는 4막 아리아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 없다'에선 권력자의 쓸쓸한 내면이 진하게 묻어났고, 세속 위에 군림하는 종교 재판관과 대결하는 장면은 아슬아슬했다. 아냐 하르테로스는 우아한 외모에 걸맞은 기품과 깊이를 갖춘 목소리였다. 연인을 아들로 만나야 하는 비극적 여인 엘리자베타를 그녀보다 더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이를 만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스라엘 지휘자 애셔 피시가 이끈 바이에른 극장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에 최적화된 연주를 들려줬다.

서울대 음대를 나와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전속 가수로 활약한 김재형은 런던 로열오페라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등에 이미 주역으로 섰다. 지난 1월엔 빈 오페라극장 '시몬 보카네그라' 주역도 맡았다. 그때도 라몬 바르가스가 펑크 낸 공연의 대타였다.

공연 후 만난 김재형은 "바르가스 덕분에 계속 중요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번 무대는 쉽지 않았어요. 보름 전에 녹내장 수술을 했거든요. 아직 회복이 덜 돼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오케스트라 리허설만 한 번 하고 무대에 올라섰거든요." 이런 몸으로 24일과 27일, 그리고 30일까지 이번 페스티벌의 '돈 카를로' 전 공연을 책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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