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함 vs 다정함, 우리 엄만 어느 쪽일까

입력 : 2015.07.29 23:55

[연극 '잘자요, 엄마' 엄마役 더블캐스팅 비교해보니]

김용림 - 일상과 비극 오가는 감정 연기
나문희 - 수다스럽지만 따사로운 母性

평온한 저녁, 엄마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주기로 한 딸이 느닷없이 다락에서 권총을 꺼내 먼지를 닦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가 날 죽이려고 해, 엄마." 농담인 줄 알고 "그래? 그거 재밌겠다"라며 시큰둥하게 응수하던 엄마는 차츰 딸이 정말로 자살하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어지는 모녀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그동안 쌓아둔 채 소통하지 못했던 아픔과 외로움을 절절하게 토로한다.

연극‘잘자요, 엄마’에 모녀 역으로 더블캐스팅된 이지하·김용림(왼쪽 사진)과 염혜란·나문희. 이들은 평범한 줄만 알았던 모녀 관계의 아픔과 소통을 연기한다. /수현재컴퍼니 제공
연극‘잘자요, 엄마’에 모녀 역으로 더블캐스팅된 이지하·김용림(왼쪽 사진)과 염혜란·나문희. 이들은 평범한 줄만 알았던 모녀 관계의 아픔과 소통을 연기한다. /수현재컴퍼니 제공
수현재컴퍼니(대표 조재현)의 연극 '잘자요, 엄마'(마샤 노먼 작, 문삼화 연출)는 객석 70~80%가 모녀(母女) 관객인 독특한 공연이다. 1982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됐고 다음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돼 박정자·손숙(엄마 역), 윤석화·정경순(딸 역) 등이 출연했다. 올해 공연엔 TV 드라마로 친숙한 김용림(75)과 나문희(74)가 엄마 역에 더블캐스팅돼 번갈아 무대에 서고 있다. 이들은 이 작품의 1987년 국내 초연(김용림)과 2008년 공연(나문희)에서 같은 역을 맡았다.

나문희가 연기하는 엄마는 '한국 엄마 같다'고 느낄 만큼 수다스럽고 다정다감했다.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와 짜증, 빈정거림 속에도 딸을 염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인생에서 누가 누구한테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겁니다' 할 수 있니? 행복이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아"라고 할 때는 햇볕처럼 따사로운 모성(母性)을 발휘했다. "아가, 날 용서해다오, 난 네가 내 건 줄 알았어"라는 절규는 그만큼 아픔이 깊었다.

김용림은 좀 더 '비극적인 엄마'였다. 그의 연기에는 일상의 화사함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의 극적인 대비가 명암(明暗)처럼 드러났다. "내가 어떻게 널 떠나보낼 수 있니…"라는 대사에선 애절함의 농도가 더 짙었고, "싸가지없는 년, 시건방 떨기는"이라며 딸을 꾸짖을 때는 객석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마지막 장면, 수화기를 들고 "얘야, 도슨(아들) 좀 바꿔라"고 할 때 그의 표정은 공포영화처럼 싸늘하게 바뀌는데, 엄마가 진짜 가해자인 것으로 극 전체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딸 제시 역을 맡은 이지하(45)는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 속에 여린 감성과 삶에 지친 허무감을 담았고, 염혜란(39)은 거칠고 남성적인 모습으로 죽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도중 객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게 하는 데는 배우 네 명의 구분이 없었다.

▷8월 3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공연 시간 80분, (02)766-6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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